둠스데이(Doomsday)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것이든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사람들은 지구가 종말을 맞는 그날을 '운명의 날', '최후 심판의 날'이라는 뜻으로 '둠스데이(doomsday)'라고 부르며
수많은 예언들에 대한 절망적인 해석들을 확대재생산해내며 불안에 떨기도 하고 허무맹랑한 희망에 매달리기도 했다.
2012년 12월 21일.
아득한 옛날부터 중앙아메리카에는 마야인들이 살다가 불가사이한 문명의 유적들만 남기고
유럽 사람들이 신대륙에 도착하기 훨씬 이전인 서기 600년경에 홀연히 사라졌다.
'마야(Maya)'라는 이름이 '주기(週期)'라는 뜻이라고 하니 그들은 '시간의 부족'이었던 셈이다.
놀랍게도 그 시절에 벌써 천체의 운행을 훤히 꿰고 있던 그들은 시간의 부족이라는 그들의 이름답게 과학적인 달력을 남겼다.
이른바 '마야 달력'이라는 것이다.
기원전 3114년에 시작되는 그 달력은 그로부터 13번째 박툰(그들의 시간단위로 한 박툰이 394년이다)이 종료되는 날인
2012년 12월 21일에 끝나고 있어 오래전부터 숱한 지구 종말의 예언들이 이 날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미 1999년의 세기말의 종말 예언으로 지구촌을 떠들썩하게 한 바 있는 16세기 프랑스의 예언가 노스트라다무스도 거들었다.
'말이 춤추면 고요한 아침으로부터 종말이 올 것'이라는 코미디에 가까운 그의 예언이 그것이다.
말 춤이라면 싸이를 연상시킴은 당연한 것이고 일찍이 인도의 시성(詩聖) 타고르가
우리나라를 '고요한 아침의 나라(The Land of Morning Calm)'라고 부르지 않았던가?
그러나 이 날 나는 평소처럼 여덟시 반에 아침을 먹었고 세시쯤에 전날처럼 우편물이 배달되었고
열한시 반의 밤거리에서 손을 드는 내 앞에서 택시는 예외 없이 멈추어 섰고
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섰을 때 냉장고 소리는 여전히 거실의 정적을 평화롭게 깨트리고 있었다.
하늘에서 불덩이가 떨어져 내릴 거라던 이 날, 하늘에서는 싸라기가 섞인 비가 내렸다.
우천 시 미루어지는 야구경기처럼 지구의 종말도 비 때문에 미루어진 것인가?
이처럼 잊을 만하면 다시 불거져 나와 종말론이 기승을 부리는 것은
불안과 공포야말로 사람들의 이성을 마비시켜 복종하게 하는 가장 효과적이며 위력적인 수단이기 때문 아닐까?
1992년 가을, 우리나라를 불안에 떨게 한 종말론이 있었다.
이른바 '휴거(携擧, 들어 올린다는 뜻이다)' 소동이 그것이다.
이정림 목사라는 사람이 주도하던 다미선교회는 10월 28일 최후의 심판이 도래해 지구는 종말을 맞고
자신을 믿는 사람들만이 하늘로 들리어져 재림하는 예수와 만나게 된다는 예언으로 사람들을 불안에 떨게 했다.
무려 8000여 명의 사람들이 그에게 재산을 갖다 바치고 그와 함께 들어 올려지기를 초조하게 기다렸지만
지구의 중력은 여전히 그들의 발을 땅에 붙어 있게 했고 그 다음날에도 해는 떠올랐다.
예언의 시대는 갔지만 예언에 속임을 당하는 사람들의 시대는 아마도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영원히 끝나지 않을 사람들의 불안을 반영하듯 수많은 지구 종말의 영화들이 만들어졌다.
텍사스 크기의 행성이 지구를 향해 돌진해온다는 '아마겟돈', 혜성이 지구와 충돌하는 '딥 임팩트(Deep Impact)',
극지방의 빙하가 녹아 바닷물이 차가워져 지구가 새로운 빙하기를 맞게 된다는 '투모로우(Tomorrow)',
태양 흑점의 폭발로 인한 종말을 그린 '노잉(Knowing)' 등 다 주워섬기기가 힘들 정도다.
이러한 지속적인 문화현상들은
유감스럽게도 그 불안이 어느 정도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팩트에 근거를 두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지구의 종말의 여러 가지 징후들을 적시하고 있는 성서의 요한계시록의 예언들은 차치하고라도
우리 주위에 예측 가능한 종말의 징후들은 얼마든지 있다.
지진과 화산폭발의 강도와 빈도가 점점 더 높아져가고 있음을 지질학자들은 경고하고 있다.
일본의 동북지방의 해안을 휩쓸던 쓰나미의 공포를 보지 않았던가? 백두산의 화산 활동도 심상치 않다.
아인스타인은 3차 세계대전에 쓰일 무기는 어떤 것일지 모르지만 4차 세계대전에 쓰일 무기는
투석기(slingshot, 돌로 공격하던 원시적 무기)가 틀림없을 거라고 전쟁으로 인한 문명의 종말을 예언했다.
1997년 최초로 인공지능의 로봇 '딥블루'가 체스 챔피언을 이겼다.
그 로봇은 자신을 설계한 인간이 예상치 못한 공격으로 챔피언에게 속수무책의 패배를 안겼다.
초지능을 지닌 로봇들이 자신들의 주인인 인간들과 그들의 문명을 파괴할지도 모른다는 섬뜩한 경고이다.
가장 처참한 종말론의 리스트 맨 꼭대기에 합성생물학이 있다.
이미 1976년에 나타난 통제불능의 바이러스 에볼라가 경고한 바 있지만
실수로든 고의로든 인간이 만들어낸 치명적 미생물이 미증유의 재앙을 불러올 수도 있다.
저명한 과학자들로 이루어진 핵과학자회보(BAS)가 발표하는 지구 종말시계가 지금 11시 55분을 가리키고 있다.
이 시계의 자정은 다시 하루가 시작되는 12시가 아니라 영원히 멈추어서는 12시다.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의 스칼렛 오하라의 마지막 대사
'내일 또 하루가 시작된다(Tomorrow is another day)'가 아닌
'내일은 오지 않는다(Tomorrow is no day)'이다.
삽화 이석희(서양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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