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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락 (凋落)|

U블럭 2013. 9. 30. 05:17

 

 

 

 

 

조락(凋落)

                         
나 젊었을 때에 조락이라는 말을 몰랐다.
자주 안 쓰는 한자어이기도 했지만
그 단어를 접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조락은 우리나라의 계절로는 11월 바로 지금에 딱 알맞는 단어이다.
그러니 한참 젊을 때 주위의 누구도 이 조락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으니
알 리가 없는 것이다.
조락은 시들어 떨어지는 것을 말한다.
또한 조락은 기운, 건강, 가세 등이 기우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슬프고 마음 아파함의 뜻도 있다.

우리는 새봄을 파릇파릇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가을을 울긋불긋이라고 말한다.
온통 산과 들이 수채화 물감을 범벅을 해 놓은 것처럼 아름답다.
빨강, 노랑, 하양 연두 등 원색의 봄에 비하여 가을의 색깔은 매우 화려하다.
갈매빛의 여름 색깔에 비하여 가을의 색깔은 황홀하다.
그러나 그 가을의 색깔은 다시 한 번 곰곰 생각하면
숙연하게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는 색깔이다.
일이십 대를 봄이라 하고 삼사십 대를 여름이라 한다면
오륙십 대는 곧 가을이다.
길을 걷다가 딩구는 낙엽을 보고 이제 인생의 가을 문턱에 기대어
조락을 새삼 떠올린다.

지금 생각하면 아! 나에게도 일이십 대가 있었던가 싶다.
꿈만 같던 꿈꾸던 시절이었다.
모든 것이 불만이었고 또 아름다웠고 고뇌에 찼었다.
배움과 성장, 그리고 사랑과 이별, 거부와 패기의 시기였다.
지금 생각하니 치기 어린 시절이기도 했다.
철모르고 정신없이 덤벼든 삼사십대. 도전과 좌절을 밥먹듯이 했다.
몇 푼 돈에 목이 매이면서도 자존심은 남아 <목구멍이 포도청>을 외쳤다.
한 잔 술과 휴일을 기다리는 재미로 살았다.
타성에 젖어 나중에는 습관처럼 출퇴근을 하다보니 문득
애들은 다 커서 저 혼자 자랐고 나만 덩그라니 동떨어져 있음을 깨달았다.

아, 정신없이 봄과 여름을 지나왔다.
진달래 개나리 벚꽃도 나 몰라라 했고
푸른 바다도 장마도 태풍도 애써 외면하며 달음질만 쳐왔다.
그 길밖에 없었고 그 길만 배웠고 그 길만 길인 줄 알았다.
혼자 길 한가운데서 나를 본다.
어? 이게 누구지? 내 옆에 있던 사람들 다 어디 갔지?
왜 나만 여기 있어야 하는 거야.
과연 누구를 위해 무엇 때문에 이 길을 왔지?
이 길이 제대로 된 길인가?
이 길의 끝은 어디지?
잘못온 길이면 이제 어떻게 하지?
아무도 없다. 물어볼 곳도 없다.
알려줄 사람도 없다.
바람이 휭 불고 낙엽이 우수수 떨어져 이리저리 딩군다.

가을은 갈대가 있어서 가을이다.
물가의 갈대나 산비탈의 억새들.
꼬장꼬장 시퍼렇게 날을 세우고 종아리를 할퀴던 그 풀들이 어느새
누렇게 되더니 칙칙하게 갈빛으로 젖어 시든다.
들판의 벼들은 다 거두어져 삭막한 그루터기만 남았다.
잡풀 무성하던 들판은 어디를 보나 어룩어룩 누릇누릇이다.
길거리는 낙엽들이 뒹굴고
바쁜 차들이 냅다 달리면 와사사삭 까르르륵 놀리며 따라간다.
산은 더 이상 물감을 찍을 곳 없이 알록달록이다.
그러나 아주 잠시 뒤면 이제 곧 저 잎들도 다 떨어지고
서리가 희끗희끗 내리면 산과 들엔 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
그리고는 시베리아 같은 눈보라 뿐이고 북극 같은 죽음 뿐이리라.
살아있는 것은 시들어 떨어진다.
떨어지기 전에 시들고 시들기 전에 슬프도록 아름답게 물든다.
시들기 전의 마지막 불꽃이리라.

아 내 청춘은 언제 이토록 아름다웠던가?
몇십 년 살아오면서 과연 나는 꽃처럼 아름답게 살려 한 적이 그 얼마인가?
이제와 생각하니 그 긴긴 세월 동안 나는 과연 무엇을 찾으려 헤맸던가?
다 헛되고 헛되도다. 저기 저 나뭇잎과 풀들보다 못한 것이 바로 나이다.
저들은 내년 봄이면 다시 돋아나지만 나는 돌아오지 못할 길이다.
사그라지고 모지라진 몸을 본다.
펄펄 뛰던 가슴을 쓸어본다.
기운은 다 빠지고 눈은 가물거리고 다리는 휘청거리고
손은 이미 메마르고 거칠다.
가슴엔 슬픔만 고이고 뱃속에는 욕심만 가득하고 머리 속은 수심만 가득하다.
아! 조락이여. 너도 시들고 나도 떨어진다.

떨어지는 잎들. 그들은 모를 것이다.
자신이 왜 떨어져야 하는지를.
자연의 섭리라는 것을 잎들은 모른다.
겨울을 나기 위한 자연의 이치.
땅에 떨어져 부엽토가 되어 내년에 돋아날 새잎을 위한 거름인 것을.
나도 자연의 일부이거늘 영원할 수는 없다.
오늘 내가 뿌린 이 땀과 눈물과 한숨을 거름으로
내일의 뒷사람들이 행복할 수 있다면 그것이 또한 자연이 내게 준 섭리 아닌가.
나는 그래도 그 섭리를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저 조락하는 잎들보다는 더 잘 적응할 것이다.
나는 내게 주어진 역할, 세대를 잇는 고리의 역할을 충실히 하면 족한 것이다.
그래, 열심히 지금을 사는 게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모든 것이다.

지팡이에 몸을 싣고 다시 한번 몸을 추스른다.
가자. 그래도 가자. 길은 가는 데 그, 뜻이 있으려니.
태어날 때 뜻 모르고 태어났으니 갈 때만이라도 능히 그 뜻을 알리라.
아니 알아야 한다. 몰라도 아는 척 용감하게 갈 것이다.
내 길은 아무도 대신 할 수 없는 나만의 길이다.
누구와 비교할 수도 없고 앞서고 뒤서고 없는 나만의 길이다.
내게만이라도 말할 것이다. 넌 그래도 열심히 살았노라고.
해마다 찾아오는 이 짧은 조락. 몇번의 조락을 더 볼 수 있을지 모른다.
이 조락을 보고 슬픔에 잠기다가 다시금 슬픔을 감출 수 있는 것 또한
나만의 스승이요. 나만의 사는 즐거움 아니겠는가.
아직은 늙고 병들고 지친 몸이지만
가족이 기다리는 집으로 어서 가자.


2000.11.5

 

 

 

 

 

사진,글,하모니카 연주 : 김종태(시인,하모니카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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