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이름은 담배. 1일부터 몸값이 2000원 올라 팬들의 한숨을 불러온 장본인이지. 지난해 말엔 나를 미리 구해 놓겠다고 편의점을 수십 곳 돌며 사재기를 한 사람이 많았다고 들었어.
새해 들어 나와 이별하려는 분도 많다며? 돈도 돈이지만 금연구역이 모든 식당과 공공장소로 확대되면서 따가운 눈총을 받기 싫다고 말이야. 금연구역에서 나를 피우다 걸리면 과태료 10만원도 내야 한다며?
하지만 나를 끊는 게 정말 가능할까. 이래 봬도 한국에서 400년 가까이 살아남은 몸이라고. 내 화려한 생존기를 들어볼래?

내가 한반도에 들어온 건 17세기 초야. 일본을 통해 왔지. 나에게 푹 빠진 사람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어. 날 건강에 좋다고 오해한 사람이 많았거든. 소화를 촉진하거나 가래를 없애 주고, 구충에 효과가 있다는 인식이 퍼져 있었어(1635년, 『인조실록』). 기(氣)를 내려 준다고도 했지(1614년, 이수광의 『지봉유설』). 병을 치료하겠다며 말 한 필을 주고 담배 한 근을 사서 피우는 사람도 있었다네.
그런 무지 때문에 아동 흡연도 많았어. 『하멜표류기』(1668년)는 “어린이들까지도 4~5세 때 담배를 배우기 시작하며, 남녀 간에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이 극히 드물다”고 했지. 『열하일기』는 “젖먹이들까지도 즐겨 피우지 않는 이가 없을뿐더러”라고 했고 『인조실록』은 “겨우 젖먹이를 면하면 횡죽을 피운다”고까지 했다고. 중독자가 ‘안정적으로’ 재생산되는 구조였지.
게다가 난 청과의 무역에서 조선에 막대한 은을 벌어다 주는 일등 공신이었다고. 조선은 기상이나 토양으로 볼 때 전국에서 나를 재배하는 게 가능했거든. 외교적으로도 중요했지. 병자호란 포로를 돌려받는 대가로 은을 줬거든. 이런 실리 때문에 조선은 금연령에 적극적이지 않았어. 내 생존 여건이 구조적으로 마련됐지.
반면 청은 금연령이 엄격했어. 담배의 대량 수입으로 은이 유출되는 걸 막으려 했거든. 1634년 금연령을 반포하고 국경 근처에서 구매하는 자는 사형에 처했어. 일본도 흡연으로 화재가 발생하자 1609년 ‘옥내 흡연 금지령’을 내렸지.
조선에서도 금연령을 내린 적이 있긴 해. 충청에서 담뱃불로 화재가 났거든(숙종 43년 금연령). 기우제나 사직단 제례 같은 국가 행사 중에도 나를 손에서 내려놓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 금연령이 반포됐지. 하지만 애연가였던 정조는 1777년 국가 제례 시에도 흡연을 인정하는 획기적 조처를 단행했다고. 양반들이 신분이 낮은 사람, 어린이, 여자의 흡연을 문제 삼긴 했지만 역시 전 사회적인 금연은 실패했어. 얼마나 나에게 중독됐던지 먹을 게 없어 구호식량을 풀어도 나와 맞바꿀 정도였거든.
당시에도 국가가 주도하는 금연령이 성공할 수 없다는 건 예견했나 봐. 1808년 『순조실록』은 기록하고 있어. “담배는 몸에 이익에 없는데도 드러나게 좋아하는 것이 이에 이르렀으니, 만약 법을 엄하게 하여 금지한다면 죄를 무릅쓰고 금법을 범하는 것이 심할 것입니다”고. 1894년에도 김홍집 정권이 거리에서 담뱃대 사용을 금지하는 법령을 공포했지만 소용없었어. 일제는 식민 재정을 확보하기 위해 1909년부터 나에게 세금을 부과했어. 그래도 사람들은 나를 끊지 않았지.

물론 위기도 있었어. 1960년대 미국에서 내가 인체에 유해하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면서 금연 바람이 불기 시작했거든. 한국에서도 의사들을 중심으로 한국금연운동협의회가 만들어졌어. 정부는 사람들과 나를 떼어 놓겠다고 각종 정책을 실시하기 시작했지. 내가 볼 땐 올해 적용되는 시책이 제일 센 것 같긴 해. 2월부터 금연 보조제는 최대 70%까지 지원해 주고 나를 끊으면 치료비 일부를 포상금 형식으로 돌려받는다며? 저소득층엔 금연 치료비 전액을 지원한다고 하대.
하지만 결과는 지켜봐야 해. 본격적인 금연운동이 시작된 지 26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나를 끊지 못하는 사람이 많잖아. 19세 이상 남자 중엔 거의 절반(43.7%·2012년 기준)이 그래. 여자들도 공식적으론 7.9%만 피운다고 하지만 지난해 말 소변 내 니코틴을 측정한 결과로는 흡연율이 18.2%나 되는 걸로 나타났다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흡연율 1, 2위를 다투잖아. 청소년 흡연율도 9.2%(2014년 기준)나 돼.
물론 문제는 사람들의 의지야. 최근 금연 클리닉을 찾는 사람이 두 배 늘었다며? “이제 담배 한 개비에 225원이니 하루에 한 갑을 피우면 1년에 164만원이 든다”며 계산기를 두드리는 사람도 많다고 하대. 94년엔 900원이었던 한 갑 가격이 500%(4500원)나 올랐으니 가슴이 아프긴 하겠지. 하지만 역시 비싸다는 이유로는 못 끊을 거야. 조상들도 그랬거든. “8인 가족이 하루에 소비하는 비용만도 십문전(十文錢·쌀 3.6㎏을 살 수 있는 돈)을 내려가지 않는다. 파산해 몰락하는 집안이라도 반드시 얻는다”(1709년, 『승정원일기』)고 했다고.
흡연 경고 그림을 나에게 집어넣는 건 담배회사들의 로비로 이번에도 못했잖아. 가격 인상보다 경고 그림이나 진열대 금지가 나를 끊는 데 효과적이라고 다들 이야기하면서도 말이야. “인상가격 중 담배회사에 돌아가는 ‘유통마진 및 제조원가’가 950원에서 1182원으로 올라 결국 담배회사 배만 불릴 것”(서홍관 국립암센터 교수)이라고도 하더라고.
나, 사실 다른 나라에선 점점 살기 힘들어. 담배 경고 그림 도입에 적극적이거든. 캐나다·호주 등 77개국이 그래. 브라질에서는 자연유산된 태아 사진을 넣기도 해. 나를 마약으로 규정한 곳도 있어. 영국 금연운동가(알렌 카)는 “담배를 피울 때 니코틴이 폐에서 뇌로 전달되는 속도가 마약을 혈관에 주입하는 것보다 빠르다. 마약처럼 니코틴을 체내에 유지하기 위해 사람들이 담배를 한 갑 정도 피우는 것”이라고 했어. 금연운동협의회를 만든 김일순 연세대 명예교수도 “앞으로는 담배가 마약처럼 인식돼 꺼내기조차 어려운 사회가 올 것”이라고 예상하대. 하지만 그런 사회가 과연 올까? 수많은 골초가 나를 끊는 데 성공할 수 있겠어? 한번 해 보라고. 마약보다 끈질긴 유혹은 계속될 테니. 지금, 나를 한 대만 피워 봐. 내일부터 끊으면 되잖아. 어차피 내일도 못하겠지만. 푸하하.
※참조 : 신규환·서홍관 ‘조선후기 흡연인구의 확대과정과 흡연문화의 형성’, 알렌 카 『스탑 스모킹』, 이현우 『골초 이 과장의 죽자사자 금연분투기』, 나하연 『단칼 금연』
백일현·김민상 기자 keysme@joongang.co.kr
'재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상적인 여성 몸무게는? (0) | 2017.12.03 |
---|---|
여보, 나 밥 하잖아요, 기다리라니까 (0) | 2017.12.03 |
식당 음식 주문할 때 주의할 점 (0) | 2017.12.03 |
하이눈 2부 (0) | 2017.11.30 |
하이눈 1부 (0) | 2017.11.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