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과 약초’라는 뜻을 가진 영어 Herb는 Herba라는 라틴어에서 파생된 말로 ‘푸른 풀’이란 뜻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박하‧미나리‧생강‧쑥 등이 ‘향과 약초’의 역할을 하고 있다. 허브는 원래 주로 사용하던 약용에서 벗어나 식용과 향료로 폭넓게 범위를 확대해가고 있기 때문에, 라벤더‧로즈마리‧민트‧제라늄‧알리움‧캐모마일 등 허브의 이름이 그대로 제품명으로 쓰이는 경우도 많다. 요즘에는 웬만큼 실내정원을 가꾸는 집에서는 허브 화분 몇 개씩은 기르고 있어 현관을 들어서면 은은한 허브 향이 손님을 반겨주기도 한다.
원예식물로서 허브의 소속은 채소다. 채소 가운데서도 가장 매력적인 식물이다. 생김새부터 잎‧꽃‧열매까지 예쁘지 않은 곳이 없으며, 맛과 향도 좋고 몸에도 좋다. 허브 열매 가운데는 과일로 먹는 것도 있다. 즉, 원예식물의 3대 분야인 화훼‧과수‧채소에 모두 속한다는 뜻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즐겨 먹는 파‧마늘‧양파‧부추 등도 일종의 허브다.
저자는 허브식물을 세밀화로 그려 책으로 펴내기 위해 1년 동안 공을 들여 허브식물을 모으거나 관찰하러 다녔다. 먼저 목록을 만든 뒤 꽃이 피고 열매가 맺는 시기에 맞춰 시간표를 짠 뒤에 찾아다녔다. 자생종은 산과 들의 유명 자생지를 찾아갔고, 외래종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재배되는 품종 위주로 관찰하고 그렸다. 일부 외래종은 직접 종자를 사다가 정원에서 기르기도 했다. 서울 강동구 길동 일자산 자락에 있는 허브천문공원은 우리나라에서 외래종 허브를 가장 많이 기르고 있는 곳이다.
마침 저자의 대학시절 은사는 우리나라에 상굿도 허브식물이 널리 알려지지 않았을 때 허브식물을 소개하고 강좌를 개설하여 가르친 분이었다. 그는 독일 유학시절에 허브의 매력과 다양한 용도에 매료되었다. 그는 식사를 할 때도 반찬으로 나오는 각종 채소에 대해 다양한 얘기를 들려주기도 했다. 삼겹살은 꼭 로즈마리로 냄새를 제거한 뒤에 구워먹었다고 했는데, 그 맛있는 삼겹살 얘기에 참이슬 얘기가 빠져 있어 한구석이 허전했다. 불면증이 심한 제자에게는 라벤더 잎을 베갯속으로 쓰도록 처방하여 해결해주기도 했다. 그는 허브 없는 일상생활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의 마니아였는데, 허브천문공원도 그가 소개해주었다.
허브천문공원에는 라벤더‧로즈마리‧민트‧제라늄‧알리움‧캐모마일 등 흔한 품종 외에 램스이어‧에키네시아‧팬넬‧서양톱풀‧헬리오트로피움처럼 귀한 품종도 식재되어 있다. 저자는 보름에 한 번씩 이 공원에 들러 허브식물을 관찰하고 그림으로 그렸다. 정원에 있는 것과 품종이 겹칠 때는 성장환경이 다르면 어떤 차이가 나는지를 관찰하여 자세하게 기록하기도 했다.
외래종의 원산지는 대부분 지중해 연안이다. 프랑스와 이탈이아 음식의 세계적인 명성에는 허브도 적잖은 공헌을 했다. 음식문화가 발달한 지역에는 예외 없이 다양한 허브식물이 자생하고 있다. 한식이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어가고 있는 이면에는 파‧마늘‧생강‧미나리‧쑥 등 우리나라 자생 허브식물의 공도 크다. 허브식물은 원산지가 워낙 따뜻한 곳이다 보니 우리나라에서는 아무리 공을 들여도 원산지만큼 훌륭한 생장을 기대할 수 없다. 다양한 종류의 허브식물을 각각의 용도에 맞도록 소비하고 활용하는지, 우리나라에 와서 어떻게 용도가 변형되었는지를 살피고 기록해두는 일도 중요한 연구과제 중 하나다. 책이 나올 때까지 꼬박 1년 동안, 저자는 휴일도 없이 집에 마련되어 있는 작업실과 허브천문공원과 학교만 오가며 허브에 매달렸다.
허브천문공원은 길동배수지 위 3500여 평에 꽃과 나무를 심고 별자리와 일출‧월출을 볼 수 있도록 조성해놓은 강동구의 근린공원이다. 허브식물들은 대부분 한해살이풀이기 때문에 봄부터 가을까지 쉬지 않고 모종을 심고, 가꾸고, 열매를 채종하여 씨앗을 받는다. 저자는 직원들이 바쁘게 일하는 틈바구니에서 역시 바쁘게 허브식물들을 관찰하고 그렸다. 종일 허브식물들을 만지며 작업을 하고 온 다음에는 며칠 동안 손에서 허브향이 풍긴다. 다음해 여름 책이 나온 뒤에도 저자는 이따금 공원엘 들린다. 허브들이 잘 자라고 있는지 궁금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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