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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갑을 줍다

U블럭 2014. 4. 1. 20:53

 

 

 

지갑을 줍다 /  오영수

 

 

 

 

어제부터 손님이라고는 코빼기도 볼 수 없었다. 아무리 불경기라 하지만 10여 년을 넘게 장사를 해온 중에 최악의 상황이었다. 이 상태가 몇 달만 지속한다면 산에 목매달러 갈 사람 부지기수로 나오지 않을까 하는 염려조차 들 정도였다. 가게를 운영하자면 필연적으로 들어가야 하는 경비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데 이리되어서는 가게를 문 닫아야 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보증금도 못 건지고 빚만 산더미로 지고 길에 나 앉아야 할 판이었다.

 

라디오에서 들은 빚에 졸린 가장이 한강에 투신했다는 뉴스가 새삼스럽게 들리지 않는다. 투신자의 이름만 바꾼다면 그게 나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작년에 한강에 스스로 뛰어든 사람이 121명이나 되었다고 스마트폰에 뉴스로 뜬다.

 

장사가 잘 될 때는 술 먹으러 나오라는 친구들도 많았는데 요즘은 그들의 전화도 뜸한 게 저들끼리만 모여 술을 마시는 듯했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고 세상인심이란 게 고약하고 참으로 야박하다고 생각하다가도 어쩌면 그들도 나처럼 궁상을 떨면서 누군가의 전화를 기다리며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서민들은 겨울에 길을 가다 눈길에 미끄러져 다치기만 해도 수입이 끊겨 번개탄을 피어 놓고 생목숨을 끊어야 할 정도로 생계에 위협을 받고 있음에도 이 땅에 언론들은 본연의 임무는 져버리고 높은 공직자의 비리가 터지면 연예계 기사를 활용하고, 새누리당에 불리하면 노무현 기사로 재탕하거나 아니면 일본 아베 총리 기사, 또는 대기업 세금 횡령기사를 쓰거나 야당 추문 관련 기사를 내보내며, 대통령에 불리한 국면에는 북한 관련 기사로 물타기 하여 그들이 그토록 비웃는 북한의 기쁨조 노릇을 스스로 자처하거나 충견 노릇을 마다하지 않는다.

 

이에 질세라 정부도 하는 짓이 여론 호도할 경우가 있으면 일베충이나 국정원을 동원하여 댓글질하거나 대통령에게 불리한 일이 불거질 기미가 보이거나 일을 새로 만들려는 의도가 있을 시는 해외순방을 핑계로 하여 국면을 타개한다. 더 나아가 나라를 운영하시는 높은 분들은 간첩을 만들어 시국을 타개해 보겠다고 다른 나라의 외교문서까지 날조하여 간첩으로 생산해 내다 들통이 나서 전 세계적으로 개망신을 당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촛불을 드는 국민 외에는 무덤덤 하게 일상을 보내며 돈이 일생의 목표가 되어 살고 있는 이 나라가 미쳐 돌아가고 있는 듯 보였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 날조뉴스를 보고 있자니 울화통이 터져 왔다. 검찰이 하는 짓거리를 보면 몸통은 그대로 놔두고 다른 큰 사건이 터질 때까지 시간 끌기 하다가 흐지부지 넘기고 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짜증이 밀려들어서인지 머리가 아파 오는 게 몸 컨디션이 정상이 아니었다. 답답함이 목젖까지 짓누르고 올라 이대로는 생으로 질식할 것만 같았다. 암이 스트레스에서 시작되는 것이라면 제명에 살긴 아예 그른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 치밀어 올라 도둑도 손님이라는 오기가 생겨 가게 문도 잠그지 않고 산에나 가자며 가게를 나섰다.

 

봄도 있는 놈에게 봄이지 없는 놈에겐 사치였다. 개나리며 목련이 길가에 흐드러지게 피었어도 눈길이 쉽게 가질 않는다. 악재는 한꺼번에 몰려온다고 담배 떨어지면 돈 없듯이 약 사 먹을 돈도 없는데 배가 살살 아파 오는 것이 아무래도 며칠 전에 먹었던 콩나물을 아까워서 버리지 않고 남겼다가 먹은 게 원인이 되었거나 식은 밥 덩이를 물에 말아 들이키듯 먹은 게 탈을 부른 듯싶다.

작은 냉장고를 산다 산다면서도 계속되는 불황으로 인해 집에 생활비도 제때 못 가져다주는 처지에 냉장고를 산다는 게 사치지 싶어 남은 음식물들을 작은 다라에 물을 담아 그곳에 보관하고는 했는데 아무래도 음식 상한 줄 모르고 먹은 듯했다. 활명수라도 한 병 사 먹었으면 좋으련만 늦둥이 딸이 학용품을 사야 한다기에 주머닛돈을 털리고 궁하게 지낸 지가 벌써 며칠째이다.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절 화장실이 나온다. (내 똥꼬야, 그때까지만 버터 주렴) 다리를 외로 꼬면서 해우소를 향해 부지런히 발걸음을 해우소로 향하며 혹시 휴지가 없을지도 몰라 부드러운 잎을 몇 개 따서 준비를 했다. 해우소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급하게 바지를 내리던 나는 심한 전기에 감전된 듯 그대로 멈춰 서고 말았다.

 

갈색 지갑이 해우소 양변기 물 빠지는 곳에 걸려 있었다. 아마도 누군가 나처럼 급했던 사람이 흘렸을 것이리라! 변기 속에 있는 지갑임에도 더럽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손이 들어가 지갑을 집어 들었다. 지갑이 조금 젖어 있었지만 제법 묵직한 게 돈이 많이 들어 있는 듯했다. 그런데 지갑을 열어보기가 망설여졌다. 이 안에 돈이 별로 없으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아직 지갑 내용을 살펴보지 않았음에도 희열과 두근거림이 머리 정수리에서 등짝으로 서서히 밀려 내려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소름이었다.

 

인간은 합리적인 동물이 아니고 합리화하는 동물이라 했던가? 벌써 나의 양심이 속삭여오는 달콤한 말에 귀를 기울인다. 이 돈을 잃은 자의 슬픔은 내 머릿속에서 스스로 정지되었다. 아니 강제추방 되었다는 말이 더 솔직한 표현이리라, 그래도 남은 양심은 있어서, 제발 이 돈의 임자가 돈 많은 사람이기를 빌고 또 빌었다.

 

돈 많은 사람에게는 어쩜 이 지갑 안에 있는 돈이 룸살롱에서 하룻밤 술값에 불과할는지 모를 금액일 수도 있는 것이다. 악마는 계속해서 내 귀에다 속삭이고 있었다. 듣다 보면 악마의 목소리도 친숙하게 들리기 시작하면서 마치 다정한 친구의 음성을 닮아가는 듯했다.

하지만 또 한편에서는 양심의 목소리가 조그마하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만약 그 돈이 부모님 치료비를 겨우 구한 사람의 돈이라면... 그래서 잃어버린 돈으로 인해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고 그 사람의 부모님이 돌아가시기라도 한다면 너는 그 죄를 어떻게 치르려 하느냐고 개도 안 하는 짓은 하지 말라면서 나를 질책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친구의 목소리가 또다시 들려오기 시작한다. 너는 앞으로 10여 일 후면 신용불량자가 되어 지금 네가 하고 있는 그 알량한 사업이나마 문을 닫아야 할 형편이라면서 이것은 하늘이 주는 기회다. 기회는 아무 때나 찾아오는 것이 아니며 오는 소나기는 일단 피하고 보는 법이라 했다. 내 친구와 내 양심이 서로 심하게 다투기 시작했다. 이건 정말이지 하늘 한번 쳐다보고 땅 한번 쳐다 보고였다.

 

사형수들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기 위해 처형장에 들어가기 직전 누구나 하늘 한번 쳐다보고 땅 한번 쳐다본다는 말을 박삼중 스님이 하셨는데 내가 지금 꼭 그런 심정이었다 하지만 일 년 넘는 부부 싸움 없듯이 싸움은 슬며시 끝나고 말았다.

소리도 안 나게 화장실 문을 살짝 밀고는 고개만 빠끔히 내밀어 화장실 밖을 살펴보니 아무도 없는 것이 참으로 다행이었다. 도둑질한 것도 아닌데 지갑을 열어보는 내 손이, 아니 숨이 턱턱 막혀오는 게 심장 마비가 이렇게 일어나는가보다 싶었다.  

 

우~씨 수표였다. 수표만 한 뭉텅이 보인다. 그리고 각종 카드가 지갑 명함 꽂이 마다 꽂혀 있었다. 오만 원짜리 가 많이 있어야 하는데 오만 원짜리는 한 장만 보이고 만 원짜리가 일곱 장 정도밖에 보이질 않는다. 수표를 잘못 쓰다가는 감옥으로 직행함을 모르는 바 아니므로, 지금 내가 습득한 수표는 타는 목마름에 바닷물과 다를 바 없는 것이었다.

이것이야말로 탄탄로스의 갈증이었다. 안전빵인 현찰 12만 원만 먹고 떨어지자니 너무 허무했다. 10만 원짜리 수표가 있으면 재래시장에서 쓸 수 있을 것 같아 살펴보았는데 백만 원과 오백만 원짜리 수표들이었고 10만 원짜리는 두 장밖에 보이질 않는다 .

 

잔머리를 굴렸다. 내가 습득한 금액의 5%만 주인이 준다면 얼마의 금액이 될까 하고 수표를 세기 시작했다. 총 3,532만 원이었다. 10%면 350만 원이고 5%면 175만 원에서 180만 원 정도를 사례비로 받을 수도 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내게 그 정도의 돈이 생기면 모든 게 해결된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졌다. 신기하게도 똥 마려움이 사라져 버렸다. 배 아픈 것도 멈추고 말았다. 

“와~아 돈이 무섭구나! 이 모든 게 순식간에 해결되다니...”

나는 우선 죄를 짓는 않는 것에 안도하였다. 내 친구도 이 방법에 흔쾌히 동조를 해주었다. 어젯밤 꿈을 꾸었는지 기억에도 없는데 나는 횡재를 한 셈이었다. 평소 나쁜 짓 안 하고 살아온 것에 대한 보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파출소에 찾아가서 자랑스럽게 돈 지갑을 내밀었다. 경찰이 돈을 세워보더니 나를 존경의 눈빛으로 바라본다. 하지만 경찰은 모르리라 현찰이었다면 내가 그냥 먹어치워 버릴 수도 있었다는 것을. 그것 때문에 내 친구와 내 양심이 얼마나 심하게 다투었는지 그들은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가능한 한 나의 모습을 가장 처량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그래야 동정심을 유발할 것이 아닌가! 그래야 지갑 주인에게 나의 정직함을 설명해줄 것이 아닌가! 그래야 사례금을 한 푼이라도 더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경찰이 커피를 타와 내게 권하였다. 경찰에게 돈을 뜯긴 적은 있어도 그들에게 이런 대접을 받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때 파출소에 전화가 왔다. 파출소 직원이 돈 지갑 형태를 묻고는 지금 착한 아저씨가 신고했다고 했다. 직원이 전화를 끊고는 나더러 조금 기다리라고 한다. 금방 파출소로 온다고 했다면서...

 

나는 경찰에게 물었다

“경찰관 아저씨 습득물 신고하면 사례비를 얼마 준다는 법이 있나요?”

경찰관이 답하기를 5%를 받을 수 있다고 했는데 옆에 있던 경찰 한 명이 10%라고 정정을 한다. 그러자 쫄따구로 보이는 경찰이 다시 말하기를 본서에 있을 때 이 같은 사건을 처리했는데 법 규정상 정해진 범위는 따로 없다고 했다. 습득자가 분실자에게 주워 준 대가를 민사로 요구할 경우에는 법이 적용될 뿐 거절할 경우에는 습득한 돈에서 얼마를 제하고 돌려줄 수는 없다고 한다.

 

똑똑한 척 말하는 경찰관의 얼굴이 그렇게 미워 보일 수가 없었다. 파출소에 3명의 경찰관이 있었는데 3명의 해석이 제각각이었다. 하지만 나는 10%를 준다는 경찰관의 말이 맞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유는 그 사람이 제일 똘똘해 보이고 그중 뛰어난 경찰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나도 모르게 나는 자꾸 시계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렇게 초조한 시간이 지나고 중년의 남자가 들어선다. 아니 스님이었다. 스님이 한 분도 아니고 서너 명이 한꺼번에 파출소 안으로 들어선다. 스님은 경찰관에게서 받은 지갑의 내용물을 살펴보고는 안도의 한숨부터 내 쉰다. 부처님 오신 날 까지 절의 단청을 새로 입힐 돈이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현찰만 따로 골라 전부 내게 주며 고맙다고 한다.

(12만 원)

내가 미리 세어봐서 12만 원임을 알고 있었다. 내 표정이 순간에 실망의 표정으로 변했었나 보다. 언뜻 보아도 큰스님처럼 보이는 노스님이 젊은 스님에게서 돈 지갑을 빼앗더니 수표를 두 장을 꺼내 내게 주신다. 그래야 20만 원 아니겠는가... 조금 전에 준 현찰 12만 원을 도로 달래지만 않는다면 그 액수에 이번에 주는 수표 두 장을 합하면 32만 원이니 애당초 내가 계산한 거보다는 못한 액수지만 그래도 이게 웬 횡제람하고 고맙게 받아들었다.

그런데 수표 색깔이 파란색이었다. 그렇다. 백만 원짜리 두 장이었다. 스님이 십만 원권을 준다는 게 잘못 뽑아들지 않았나, 해서 스님께

“이건 백만 원짜리 수표인데요,”

했더니 그 노스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그 돈은 부처님께서 주시는 돈이라오, 아마도 부처님이 처사님의 곤궁함을 아시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보아하니 아직 점심 전이신 것 같은데 우리와 함께 공양하러 가십시다.”

마치 연꽃이 핀 듯이 인자하게 생기신 신 노스님이 내 팔을 잡아끈다.

 

마누라 등쌀에 못 이겨 가기 싫은 교회를 억지로 다니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교회라도 따라다녀야 바가지를 덜 긁힐 것 같아서 마누라 뒤꽁무니를 따라다닌 것이었다. 그런 내게 교회에서는 집사 직분을 주고선 나를 부를 때 집사님이라 불렀다.

그런데 오늘은 교회에서 금기시되어있는 불교 용어인 처사님 소리가 그렇게 살갑게 들릴 수가 없다. 교회에서는 사랑을 앞세우고 불교에서는 자비를 내세우는데 아무래도 자비가 사랑보다 한 수 위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백만 원짜리 두 장이란 말에 파출소 직원들의 표정이 순식간에 부러움에 가득 찬 표정으로 바뀌어 나를 바라본다.

 

아마도 그들은 내가 자기들에게 12만 원의 잔돈을 선심으로 베풀어주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는 듯이 보였다. 왜냐면 경찰관들의 표정이 모두 밝아지는 게 그들의 표정만 보자면 너무 순한 경찰관들만 그 파출소에 몰려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속으로는 (어림도 없다 요놈들아) 하면서 겉으로는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다.  

 

나는 점심공양보다는 빨리 카드빚을 막고 밀린 공과금을 내는데 더 정신이 팔렸다. 스님께 머리 숙여 정중히 사양했다

“스님 말씀은 고마우시지만. 지금 이 돈으로 막을 것이 너무 많습니다. 사람 죽으라는 법은 없다는 것을 오늘 실감했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부디 성불하십시오,”  

 

생전 안 하여 본 합장을 공손히 하며 고개를 깊숙하게 숙였다. 그런 나를 바라보시는 노스님의 얼굴에는 자비로운 미소가 가득 차 있었다. 스님이 같이 점심공양을 못 하는 것이 아쉬웠는지 자기가 머무는 절이라며 한번 꼭 찾아오라며 명함을 한 장 주신다. 그 명함에 적힌 절의 이름은 만우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