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간기남’은 박희순과 박시연이 출연해 200만 명 가까이 관객을 불러 모은 화제작이다. 여기서 비하인드 스토리 하나. 이 영화의 제목은 이미 16년전에 지어졌다. 지난 1996년 겨울, 간통 전문 형사 구무모씨(64)가 자신이 수사했던 사건을 모아 책을 썼는데 그 제목이 바로 ‘간기남’이었다. 그때는 지금처럼 줄임말을 쓴 게 아니라 ‘간통을 기다리는 남자’라는 정직한 제목으로 출간됐다. 33년 동안 간통 사건 3000건 가까이 다루면서 겪은 경험을 쓴 책. 간통 전문 형사의 눈으로 본 불륜 커플 사례, 사생활을 수사해야 하는 형사로서 겪어야 하는 고충을 담았다.
그는 2가지 이유로 이 책을 썼다. 우선 사람들이 간통죄에 대해 너무 몰라서다. 바람피운 남편을 고소하는 데도 필요한 절차가 있다. 엄연히 공소 시효가 있고(불륜 사실을 알고 6개월 이내에 고소해야 한다), 이혼 소송이 이미 접수되어야 하는 등, 간통죄 성립에 필요한 조건들이 있다. 그런 것들을 자세하게 안내하고, 한편으로는 과연 이 법이 꼭 필요한지에 대해 개인적인 생각을 담고 싶었다. 참고로 그는 간통죄 폐지론자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그때만 해도 ‘간통’이라는 단어가 주는 부정적인 어감이 지금보다 훨씬 강했다.
제목이 워낙 적나라해서 책은 몇 권 팔리지도 못하고 금세 절판됐다. 그러다 2년 전, 한 영화사 작가가 이 제목에 ‘꽂혀서’ 구무모씨를 찾아왔다. ‘까도남’이나 ‘차도남’ 같은 줄임말이 유행하기 시작하던 때다. 이 작가는 영화 제목을 ‘간기남’으로 쓰고 간통 전문 형사를 주인공으로 등장시키는 대신, 절판된 책을 다시 출판할 수 있게 도와주겠다고 제안했다. 그렇게 영화가 만들어졌고 간통 전문가 구무모씨의 존재가 세상에 다시 알려졌다. 그는 정년 퇴임 후 가정폭력상담소의 운영과 교육에 참여하고 있다.
소위 ‘잘나가는 분’들의 불륜 잡다가 구무모씨는 베트남전 참전 용사로 남들보다 조금 늦게 경찰에 입문했다. 첫 부임지는 충남 금산경찰서 관내의 한 작은 농촌 지서. 조용한 마을에서 가끔 인삼 도둑을 잡으며 비교적 여유롭게 지냈는데 얼마 후 서울 영등포경찰서 조사계에 배치됐다. 강력 사건이 아니라 고소, 고발 사건을 다루는 부서인데 구무모씨는 신참 시절부터 간통 사건을 주로 맡았다. 그 시절 영등포경찰서에는 이런저런 사건 사고가 많이 들어왔다. 자연히 간통 사건도 많았다.
“그때는 서울 강남이 아직 완전히 개발되기 전이었거든요. 여의도 서울아파트나 광장아파트가 서울에서 제일 좋은 집이었어요. 그래서 군 장성이나 변호사, 법관 같은 사람들이 여의도에 많이 살았습니다. 은행이나 금융가, 그리고 방송국도 다 몰려 있다 보니 오가는 사람도 많고 사건 사고도 많았죠. 교수님이나 소위 ‘잘나가는’ 사람들의 간통 사건이 많았어요. 영등포 경찰서에 10년 있었는데 거기서 온갖 불륜을 봤거든요.”
간통 사건의 특성상 조사 과정에서 별의별 일이 다 생긴다. “잤다, 안 잤다” 논란은 일단 기본이고, 불륜을 저질러 놓고 “저 여자가 꽃뱀이다, 아니다 남자가 제비다” 하며 발 빼는 사람도 부지기수다. 불륜 커플이 사이좋게 손잡고 출두해 고소한 배우자에게 보란 듯 애정 행각을 벌이며 “감옥 다녀와서 우리끼리 잘 살자”고 다짐하는 경우도 있고, 적반하장으로 맞서며 극한 대립을 보이는 부부도 있다. 바람난 커플과 배우자뿐만 아니라 시댁과 친정 식구들까지 죄다 동원돼 한 마디씩 거든다. 외도를 저지른 남녀의 사연도, 집안 사정도 제각각. 가끔은 사건을 처리하는 경찰 입장에서 지켜야 할 원칙과 당사자들에게서 느끼는 인간적인 연민 사이에서 갈등도 많이 했다.
그렇게 여러 해를 보낸 구무모씨는 사람들이 왜 이렇게 바람을 피우는지 궁금해서 정신분석학과 심리학을 공부했다. 프로이트의 책을 꼼꼼히 읽고 철학과 신화까지 두루 섭렵했다. 간통에 대한 책을 쓰겠다고 생각한 건 그즈음이었다. 동료 형사들이 수사했던 간통 사건 기록까지 일일이 뒤져가며 나름대로 공부를 했다. 서른여덟 살에 경위로 승진하고 조사계장이 됐는데 그때 부터는 동료 형사들 사이에서도 ‘간통 전문가’로 통하기 시작했다.
짐승 같은 남자의 진화론적 측면
그는 유별난 취향을 가진 사람이 간통을 하는 게 아니라고 주장한다. 성생활에 유난히 집착하는 사람이 가끔 있고, 낮은 톤의 목소리로 조곤조곤 얘기하는 사람들이 소위 ‘이성을 잘 꾀는’ 경향이 있지만, 그걸 전체적인 경향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했다. 하지만 간통 사건을 아우르는 큰 틀의 추세는 있다. 남녀에 따라 외도의 모양새가 완전히 다르다는 거다. 우선 불륜을 저지르는 이유부터 다르다. 아내들은 남편에게 가진 불만이나 상대가 채워주지 못하는 부분에 대한 아쉬움이 외도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남편은 아내에게 별다른 불만이 없어도 외도가 가능하다. 시쳇말로 하면 남자의 ‘바람기’가 더 세다는 얘기인데, 구무모씨는 별다른 불만이나 동기가 없어도 바람을 피우는 남자들을 보면서 진화론에 관심을 가졌다.
“생각해보세요. 인간이 두 발로 걷기 시작한 게 350만 년 전입니다. 지구 전체의 나이로 보면 굉장히 짧은 시간이에요. 공룡이 멸망한 것만 봐도 6500만년이 넘었거든요. 그래서 사람은 아직 짐승 시절의 습관을 버리지 못한 것같아요. 남자는 수억 마리의 정자를 만들어 내보내고도 2~3일 만에 보충이 됩니다. 말하자면, 여자는 1년에 1번만 출산할 수 있는데 남자는 1년에 100번도 사정이 가능하거든요 그런 본질적인 차이를 무시할 수 없어요.”
외도를 보는 시각도 남자와 여자가 극명하게 다르다. 우선 아내의 간통으로 경찰서를 찾은 남자들은 대개 부인이 ‘섹스를 했냐 안 했냐’에’ 굉장히 집중한다. ‘어디까지 갔느냐’고 끈질기게 캐묻다가 ‘안 했다’는 대답을 들으면 최후의 보루는 지켰다는 듯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남편의 간통으로 경찰서에 온 여자들은 다르다. 섹스 여부보다는 ‘쟤네들이 정말 사랑하는 사이냐’에 더 집중한다. 구무모씨가 그간 관찰한 바에 의하면, 윤락업소에 드나든 남편을 용서하는 아내는 있어도, 남편이 누구를 좋아하는 것 같다면 그걸 용서하는 아내는 적다. 하지만 남편은 반대다. “남자들은 그런 경향이 있어요. 예를 들어 아내가 탤런트나 영화배우 누가 좋다고 말하면 그런 건 신경도 안 씁니다. 반면 아내가 친구들이랑 어디 여행 갔다가 술김에 반강제로 누군가에게 당했다면 그건 굉장히 화를 내요. 따져보면 그 부인은 누구를 좋아한 것도 아니고 분위기에 이끌려서 심지어 반강제로 그런 일을 당한 건데도 남편은 이성을 잃습니다. 사랑을 했건 안 했건 일단 같이 잤으면 끝이라고 봐요. 이런 것도 자기 유전자를 보호하려는 본능이 아직 남아서 그런 것 같아요.”
불륜에도 남녀평등이 진행 중이라는데
간통에도 어떤 경향이나 세태가 반영도될까. 33년 동안 간통 사건을 다뤄온 그는 남녀의 외도 형태를 통해 세상 변화를 읽었다. 구무모씨는 “간통에 대해 이해하려면 사람들이 가진 큰 오해 하나를 먼저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건 ‘불륜 때문에 가정이 파괴된다’는 오해다. 그게 왜 오해일까. 이미 가정이 깨진 상태여야 불륜이 나온다는 진단이다. “원만하던 부부 생활이 간통 때문에 깨지는 게 아닙니다. 속을 들여다보면 이미 파경 단계에 접어들 만큼 갈등이 심한 부부가 불륜을 저지르는 경우가 더 많아요. 간통 고소가 오간다면 이미 갈 데까지 간 부부가 각자 제 길을 찾아 나선 단계라고 봐야 됩니다. 실제로 조사를 해보면 대부분 상대에게 복수를 하겠다거나, 이혼 소송할 때 위자료 문제에서 유리한 고지를 잡겠다고 간통죄를 활용하는 경우가 많아요. 예전에야 남편의 외도를 참다 못해 버릇 좀 고쳐질까 싶어 고소하는 케이스가 종종 있었죠. 하지만 요즘은 상대의 불륜을 오래 참아주는 사람이 없다고 봐야죠.”
그가 정리해놓은 자료에 의하면, 간통 사건의 80% 이상은 고소가 취하된다. 1심 선고 전까지는 고소 취하가 가능한데 거의 모든 사건이 판결 후 징역살이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예전에는 분노나 배신감 때문에 홧김에 고소했다가 주위(친정 식구 등)의 만류로 참거나, 남편에게 소위 따끔한 맛을 한번 보여주고 소송을 중단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요즘은 다르다. 위자료나 합의금 등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쿨하게(?) 고소를 끝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당사자들도 과거에는 얼굴을 가리는 등 창피해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요즘은 오히려 당당한 모습을 보인다.
예전에는 여자들이 무조건 약자였다. 하다못해 자가용 굴리는 여자가 거의 없어서 남편을 미행하기조차 힘든 시대였다. 하지만 요즘은 자기 승용차로 남편을 쫓는 여자들이 많고, 사회생활을 하는 여자들이 늘어남에 따라 남자들과 접촉이 많아지면서 여자의 외도 케이스도 예전보다 늘었다. “우선 예전에는 ‘그래도 참고 살지’ 하는 분위기가 많았어요. 이혼에 대한 인식이 지금과 달랐으니까요. 친정 부모가 나서서 딸을 설득해 소송을 취하하는 경우도 많았어요. 문제는 이런 얘기를 여자들한테만 했다는 거죠. 아내가 외도했을 때는 저런 얘기가 안 나와요. 여자들이 교육 기회가 적고 경제적으로도 남편에게 종속되던 시대여서 그랬겠죠. 불륜에도 남녀평등(?)이 이뤄졌다고 봐야 되나(웃음).”
간통의 무대도 많이 달라졌다. 서울 서쪽에 있는 영등포경찰서에서 근무할 때 구무모씨가 현장을 덮치던 간통 사건은 주로 강화도 쪽 러브호텔과 모텔 중심이었다. 특히 강화시 외곽에 러브호텔이 많았는데 그곳에서 현장을 급습해 잡은 간통범들만 해도 셀 수가 없을 정도였다. “모텔 근처에서 잠복해보면 가족끼리 오는 사람은 하나도 없고 전부 커플이에요. 서울을 조금만 벗어나면 러브호텔이 정말 기하급수적으로 늘다시피 할 때가 있었죠. 그런데 요즘은 다들 장사가 안 된대요. 예전에 제가 드나들던 모텔들이 전부 노인 요양 병원으로 바뀌었어요. 다들 펜션으로 가서 그런가(웃음). 지나다니다 잘 보세요. 겉보기에 모텔 느낌 나는 요양 병원이 굉장히 많아요. 큰돈 안 들이고 시설을 조금만 바꾸면 된다고 하더라고요.”
옥소리가 없애려다 실패한 간통죄, 이제는 없어질까
간통에 대한 사회적인 이슈 하나가 있다. 바로 ‘간통제 폐지’ 문제다. 지난 2008년, 배우 옥소리가 헌법재판소에 간통죄 위헌 제청 심판을 청구했다. 당시 헌법재판관 9명 중 4명은 위헌, 1명은 헌법 불일치, 그리고 4명은 합헌 판결을 내서 그녀의 신청이 기각된 바 있다. 규정상 위헌 판결을 내리려면 재판관 9명 중 6명이 찬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헌법재판관 과반수 이상이 위헌 혹은 불일치 판결을 내렸다는 것도 의미가 있다. 이 논란은 20여 년 전부터 계속돼왔는데, 구무모씨 역시 간통제 폐지론자다.
“간통죄를 없애자고 하면 바람을 적극적으로 피우자는 뜻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어요. 그런 뜻이 아닙니다. 성적 자기 결정권이라는 걸 법으로 막는 게 과연 옳은지 일단 의문이고요, 간통죄 자체가 조금 애매한 부분이 있습니다. 배우자 말고 다른 사람을 사랑했는지, 도덕이나 신의, 결혼 생활에 임하는 성실성, 애정 관계 이런 것들은 전부 무시하고 오직 삽입을 했냐 안 했느냐로만 판단해요. 이게 과연 옳으냐는 거죠. 막말로 오럴 섹스나 유사 성행위를 하다 걸리면 간통이 아닙니다. 삽입을 해야 간통이에요. 그래서 폐지하자는 주장과 아울러 유사 성행위도 처벌하자, 범위를 넓히자는 논의도 있습니다.”
처음 법이 만들어졌을 때, 남편의 간통에 대한 처벌 조항은 없고 아내의 간통만 문제 삼았다. 그러다 1953년, 이건 남녀 차별이니까 없애야 된다는 주장이 나왔고, ‘그럼 남편도 처벌하자’는 의견이 받아들여져 쌍벌주의가 됐다. 우리나라는 일본의 법 체계를 많이 따랐는데 그때 이미 일본이나 독일, 프랑스 등은 간통죄 폐지가 시작되고 있었다. 예전에는 유림과 여성 단체에서 간통죄 폐지를 적극적으로 반대했다. 하지만 요즘은 일부 여성 단체에서도 폐지 주장을 내놓기도 한다. 구씨는 “여성단체의 절반 이상이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 과연 간통죄는 없어질까. 헌법재판소는 1990년과 1993년, 그리고 2001년과 2008년 총 4번에 걸쳐 간통죄의 합헌을 인정했다. 하지만 지난해 여름, 의정부지법 형사1부가 간통제의 위헌 여부를 가려달라며 다시 한 번 위헌 법률 심판을 제청했다. 소위 ‘옥소리 사건’ 당시 합헌 의견을 낸 재판관들이 퇴임한 상태여서 헌재의 결정에 관심이 모아진다. “조금씩 사문화되어가고 있어요. 폐지가 되든, 보완이 되든 어떤 형태로든 바뀔 거라고 보고요. 간통죄 자체의 취지인 도덕적인 책임이야 다들 공감하지만, 삽입한 순간부터는 법으로 처벌한다는 게 과연 합리적인지 좀 더 따져보면 좋겠어요.”
이한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