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산정
충주에 윤영호라는 화가가 산다
윤영호는 솟대를 기차게 잘 만든다
솟대는 지금은 사라진 민속신앙이다
일제가 말살한 우리의 민속신앙으로 마을 입구에 장승과 함께 세우는데
높디높은 장대 위에 새 - 주로 오리 등을 앉히는 신앙이다
이 신앙을 중심으로 마을이 뭉쳤으므로 일제는 장승은 파괴하지 않았으나
곁에 있는 솟대는 미신이라 하여 죄다 파괴해 버렸다
솟대는 하늘을 향하여 간절하게 바라는 것을 기도하는 신앙으로
지금 이야기로 한다면 솟대는 하늘로 향한 안테나인 것이다
솟대를 취재하러 충주에 갔더니 떠억하니 사진의 취산정이 버티고 있었다
아직 완성을 하지 않았으나 예삿 정자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정자라 하면 보통 경치 좋은 곳에 육각 또는 팔각으로 곧은 기둥을 세우고
기와로 잘 꾸며진 정자를 연상하지만
이 취산정은 그런 기본을 죄다 깨버린 정자였다
우선 집안 한구석에 자리잡았다
기둥은 이 취산정의 빼어난 자랑으로 모두 굽은 나무이다
해미의 개심사 부엌문 윗 중인방이 굽은 것을 보고 감탄을 했던 나는
취산정을 보고 기절할 정도였다
아 모두들 똑바로 잘 자란 나무만을 좋아하는 세태에서
개심사를 지은 사람이나 취산정을 지은 윤영호를 볼 때
이 세상 정말 살 맛이 나는 것이다
이리 뒤툴 저리 휘어청 굽을 대로 굽어서
도저히 기둥으로는 쓰지 못할 나무를 적재적소에 아주 기가 막히게 써서
훌륭한 정자를 지은 것이다
보통 사람으로 볼 때는 쓸모가 없던 것이
한 사람의 혜안으로써 기가 막힌 예술작품이 되는 것이다
저 취산정의 굽은 기둥들을 보라
바로 우리 인생이 아니고 무엇이랴
얼마나 힘든 비탈길에서 얼마나 거센 바람이었으면
저 소나무 똑바로 자라지 못하고 저리도 휘어졌을까
간신히 목숨만 부지한 채 인고의 세월을 산 인생과 무엇이 다르랴
서있는 기둥도 삐뚤삐뚤 중간에 가로지르는 중인방도 빼뚤빼뚤
지붕재료는 참나무 껍질인 굴피로써 천년을 간다는 재료이다
자연 속에서 자연과 더불어 살며 자연의 일부를 겸허히 받아들여
겸손한 마음으로 지은 저 취산정을 보면서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으며 따뜻한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비록 사진을 찍었을 때에는 한참 짓고 있는 터라 엉성하기도 하지만
저기에 또 무엇을 더 보태야 아름다울 수 있으랴
빈 듯하면서 꽉 차 있고 굽은 듯 하면서 똑바로 서 있고
낮은 듯하면서 홀로 고고한 저 취산정을 두고 내가 이름을 붙이면
<굽은정>이라고 하겠다고 했다
느릿 느릿 결코 서두르지 않으면서 벌써 몇달째 짓고 있던 저 취산정
지금쯤은 다 완성되었으리라
막걸리 한통 메고 주인장을 한번 찾아야겠다
충주 개천이라고 했다
저 굽은 기둥에 기대어 술 한잔 마시면서 곰곰 생각해야겠다
이 내 굽은 몸과 영혼은 어느 목수를 만나야 저렇게 빛날꼬
해는 뉘엿뉘엿한데 참 생각할수록 씁쓸하다
글,사진 : 김종태 시인 (하모니카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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