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주하는 그의 발가락은 손가락과 다를 바 없었다. 금호아트홀 연세 제공
두 팔이 없다. 어깨부터. 그런데 호른을 연주한다. 왼발로.
독일 출신 호른 연주자 펠릭스 클리저(24)를 8일 서울 금호아트홀 연세 무대 위에서 만났다. 그는 10일 금호아트홀 연세 개관 기념 연주회의 일환으로 국내 첫 내한공연을 갖는다.
“호른은 눈이 펑펑 내릴 때 따뜻한 목욕을 하는 느낌의 악기예요. 다른 악기처럼 테크닉을 자랑하기보다는 아름다운 음색을 통해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감성적 악기예요.”
그는 네 살 때 처음으로 호른을 배우기 시작했다. 부모가 이끈 게 아니다. 그가 갑자기 “호른을 하고 싶다”고 말했을 때 부모는 “그게 무슨 악긴데”라고 반문했을 정도였다. 그가 자란 독일의 괴팅겐은 인구 1만3000명의 작은 도시로 호른 선생도 한 명밖에 없었다. 처음엔 취미였으나 아홉 살 때 처음으로 콩쿠르에 나가 입상한 뒤 전문 연주가의 길을 꿈꾸기 시작했다.
“호른은 두 팔이 있는 사람에게도 연주하기 어려운 악기예요. 특히 호른은 왼손으로 키를 잡고 오른손을 관 속에 넣어 음색 등을 조절하는데 저는 키를 왼발로, 음색 조절을 입술로만 합니다.”
남들은 손으로 하는 걸 입으로 하니 쉽지 않다. 그는 입술 훈련을 위해 호른이 없을 때도 ‘버징(buzzing)’을 틈틈이 한다. 그가 들려준 ‘버징’은 입술을 최대한 옆으로 길게 만들어 바람을 세게 불며 나는 소리였다.
그는 독일 국립 유스 오케스트라 멤버로 활동하며 사이먼 래틀, 팝스타 ‘스팅’ 등과 공연했다. 현재 하노버 음대에 재학 중인 그는 앞으로 꾸준히 실내악 무대에 서며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이나 베를린 필과 같은 독일의 대표적 악단과 협연을 하고 싶다는 꿈을 밝혔다.
그는 이번 공연에서 슈만의 ‘호른과 피아노를 위한 아다지오와 알레그로’를 비롯해 베토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요제프 라인베르거, 라인홀트 글리에르의 호른 곡을 선보인다.
그는 “호른 독주회는 매우 드물기 때문에 이번 공연에선 호른이라는 악기와 호른을 위한 좋은 레퍼토리가 많이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다”며 “호른 연주에 두 팔이 있고 없고는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공연장에서 직접 내 연주를 들으면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룹 ‘퀸’의 프레디 머큐리를 좋아하고 한국의 김치 맛을 알아차린 그는 24세의 여느 젊은이와 다를 게 없었다.
“저는 장애인의 한계를 극복한 사람으로서 다른 사람에게 귀감을 주는 인물이 아니라 호른을 알리고 음악을 통해 메시지를 전하는 연주자로 기억에 남고 싶어요.”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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