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위해 꼽추가 된 ‘국민 생선’ 명태의 미래
지난 9월30일 강원 고성의 해양심층수 수산자원센터의 수조에 어민들의 신고로 획득한 명태 성어들이 헤엄치고 있다. 지난해부터 101마리가 들어와 7마리가 남았고, 두 마리는 자연 산란과 수정을 통해 치어들을 생산했다. 70만개 이상의 알을 낳아 ‘최고의 공로자’로 꼽힌 명태(왼쪽)가 등이 구부러진 채 떠다니고 있다. 사진/남종영 기자
▶ 명태는 2000년대 들어 동해 바다에서 사라졌다. 정부는 지난해부터 마리당 50만원의 ‘현상수배금’을 내걸고 동해 바다에서 101마리의 명태를 모았다. 급격히 바뀐 환경에서 대부분 죽고 7마리가 남았다. 암컷과 수컷의 명태가 있었다. 콘크리트 수조에서 암명태는 알을 낳고 수명태는 정자를 방출했다. 체외수정이 이뤄졌다. 국내 최초로 부화된 명태 치어 4만5000마리가 지금 강원 고성 해양심층수 수산자원센터의 원형 수조를 빙빙 돌고 있다.
우리는 풍요와 빈곤이 교차하는 기이한 시대를 살고 있다. 슈퍼마켓의 해산물 코너에 가면 토막 난 각종 생선들이 싼 가격표를 달고 소비자들을 기다린다. 애초 남반구에는 살지도 않았던 연어가 칠레 앞바다에서 대량으로 양식되어 지구 반바퀴를 돌아 도착한다. 야생의 물고기들은 사라지고 있다. 자연산 연어를 먹기가 어려워졌으며 태평양참다랑어는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의 멸종위기 적색목록에 올랐다.
한반도 바다는 어떨까? 해양수산부의 2014년 수산자원관리계획을 보면, 개체수(자원량)가 적은데다 꾸준히 감소 경향을 보이는 종은 갈치, 복어, 꽁치, 꽃게, 참홍어, 오분자기 등이다. 대개 적당히 비싸고 식탁에서 환영받는 먹을거리들이다. ‘지속가능한’ 어업을 위해 정부는 이런 식으로 자원 동향을 분석해 어획량을 규제한다. 그런데 아예 종적을 감춘 생선이 있다. 명태다. 정부는 사라진 명태를 인위적으로 살리고 있다.
현상수배로 잡혀온 명태들
강원도 산하 해양심층수 수산자원센터에서 일하는 서주영 박사는 지난해부터 새벽 전화를 받고 있다. 명태를 봤소! 그물에 걸려 올라왔어. 정말요? 살았나요, 죽었나요? 서 박사는 눈을 부비며 동해 바다 한가운데서 휴대전화를 들고 있는 어부에게 묻는다. 팔뚝만한 명태라니까, 내 꼭 살려서 가져감세. 서 박사는 화물차에 물을 채워 배가 들어오는 고성 아야진항이나 거진항으로 달려간다. 살아남거나 죽어버린 명태가 입항한다. 산 명태 한마리 50만원, 죽은 명태 5만원, 죽었어도 60㎝ 넘는 명태는 10만원의 현상금을 어부가 받는다. 지난해 해양수산부는 서 박사의 전화번호가 담긴 ‘명태 현상수배 전단’을 강원도의 각 항구에 뿌렸다.
명태는 사라졌다. 동해 바다, 정확히는 명태의 남방한계선이자 남한에서 유일하게 발견되는 강원 삼척, 고성 앞바다에서 행적이 묘연해졌다. 지나가던 개도 명태를 물고 다녔다는 고성 아야진항의 어선들도 어종을 바꾼 지 오래다. 동태(얼린 명태), 황태(덕장에서 말린 명태), 코다리(반건조시킨 명태), 노가리(어린 명태), 왜태(함경도 연안에서 잡힌 명태), 조태(낚시로 잡은 명태) 등 명태는 원산지와 가공방법에 따라 이름도 수십가지다. ‘국민생선’이었던 명태는 1970년대 10만t 이상의 어획고를 올리다 80~90년대 들어 수천t 수준으로 급격히 감소했다. 급기야 2008년에는 공식 어획량이 0으로 보고되면서 남한에서 사실상 ‘멸종’됐다. 동해 바다에서 지금 명태를 낚는 어부는 없다. 그물에 우연히 걸리는 명태 몇 마리만 있을 뿐이다.
명태를 부활시키기 위해 해양수산부 국립수산과학원과 강원도 해양심층수 수산자원센터, 강릉원주대학교가 ‘명태 살리기 프로젝트’에 지난해 돌입했다. 동해에서 현상수배해 획득한 명태에서 알을 확보해 수정·부화시키고 이들을 성어로 기르는 국내 최초의 양식 시도다. 실험의 목적은 두가지. 첫째는 성어로 기른 뒤 야생 바다에 방류해 자연적인 개체수를 늘리는 것이고, 둘째는 명태 양식의 가능성을 알아보기 위한 것이다.
지난 9월30일 고성군 죽왕면 해양심층수 수산자원센터의 한해어류 실내양식장은 가을 더위에도 서늘했다. 한류성 어종을 실험 양식하기 때문에 수온을 10도 안팎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다. 그곳에 ‘귀하디귀하신’ 명태가 있었다.
‘살아있는 명태’ 현상금 50만원
어부들 신고로 101마리 획득
다 죽고 이제 7마리 남아
4만5000마리 후대를 봤다
놀랍게도 인공수조에서
암컷과 수컷은 수정을 했다
‘멸종 방지’의 씨앗 뿌린 명태는
구부러져 떠다니고 있었다
5~6㎝ 되는 명태 치어들이 먹이를 먹고 있다. 해양심층수 수산자원센터는 명태의 산란과 사육에 성공함으로써
인공종묘 생산과 육상양식 기술 개발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사진/남종영 기자
명태는 지름 4~5m의 콘크리트 수조를 시계 반대 방향으로 쉼없이 돌았다. 이름은 명태이지만, 아직 제 꼴을 갖추지 못한 올챙이 같은 치어들이었다. 수온 10도의 수조에서 체장 13~15㎝의 치어 3만마리, 5~6㎝ 1만5000마리 등 총 4만5000마리가 영겁의 회전운동을 했다. 제대로 된 외양을 갖춘 명태는 수온 5도의 이웃 수조에 있었다. 명태 성어 6마리가 우아하게 유영하고 있었다. 아니, 7마리였다. 명태 한마리는 우아한 모습이 아니었다. 브이(V)자로 등이 굽어 고깔모자처럼 떠다녔다. 하얀 배를 드러낸 명태를 보고 서 박사가 말했다.
“상태가 안 좋습니다. 두어달 전부터 그래요.”
명태는 상업적으로 대량 양식되는 어종이 아니다. 초보적인 수준의 양식을 일본이 성공한 것으로 알려졌고, 우리나라는 명태 살리기 프로젝트를 하면서 이제 막 도전한 참이다. 서 박사는 지난해 갓 폐사한 명태에서 알을 채취해 수컷 명태의 정액을 뿌렸다. 12만개의 수정란 가운데 9만4000마리를 부화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명태들은 부레가 부풀어올라 죽은 채 떠올랐다. 부화 60일 만에 전량 폐사했다.
명태 기르기는 쉽지 않다. 어느 정도의 수온이 적당한지, 양식 조건에서는 어떤 먹이가 좋은지 아는 게 하나도 없었다. 어떤 물고기든지 양식 시도 초반에 겪는 일이긴 하지만, 많은 명태가 죽어나갔다. 이럴 때는 최대한 많은 실험 대상이 필요하다. 그러나 씨가 마른 바다에서 산 명태 구하기는 힘들었다. 게다가 알을 배어야 할 암명태, 정액을 뽑아낼 수명태가 골고루 있어야 한다. 현상수배를 통해 지난해 2월부터 지난 5월까지 수조에 들어온 산 명태 성어는 101마리였다. 며칠 되지 않아 대부분 죽었다. 꼽추 명태 1마리와 함께 헤엄치는 6마리가 지금까지 용케 살아남은 것이다.
멸종을 피하게 해준 공로자
명태에 대해서 알려진 건 많지 않다. 명태가 급작스럽게 사라진 이유도 노가리까지 잡은 지나친 남획 때문인지, 지구온난화에 따른 동해의 수온 상승 때문인지 확실치 않다. 명태의 회유 경로, 산란장의 위치도 추정만 있을 뿐이다. 대략 오호츠크해에서 한겨울 한류를 타고 강원도까지 남하하는 계군과 동해의 한랭한 냉수대에서 여름을 보내다 바닷물이 차가워진 연안으로 겨울에 접근하는 계군 등 두 무리가 있다는 말이 있지만, 명태의 실종이 두 계군 중 하나의 절멸 때문인지 아니면 회유 경로가 바뀌어서인지 알 수 없다. 따라서 해양심층수센터도 고향을 모른 채 명태를 키우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명태들 중 한마리가 올해 뜻밖의 선물을 주었다. 서 박사가 말했다.
“어미 명태의 알이 조금씩 익어요. 다 익으면 바깥으로 조금씩 산란을 하지요. 한번에 알을 털어내지 않아요. 조금씩 털어내요. 그러면 물속에서 명태의 정액이 가해지겠죠. 열두번을 그렇게 한 거 같아요.”
인공수조에서 이뤄진 자연 산란과 수정이었다. 수컷의 정자를 품고 수정이 된 알은 배수구 그물에 걸려 연구원들에게 수거됐다. 해양심층수센터는 이렇게 해서 자그마치 70만5000개의 수정란을 얻었다. 또 다른 한마리는 자연 산란과 수정에 성공해 15만개의 수정란을 남겼지만 얼마 안 되어 죽었다. 연구원들은 또 죽은 명태의 알을 채취해 지난해와 같은 방식으로 인공수정해 2만개를 또 얻었다. 이렇게 세차례에 걸쳐 87만5000개를 확보했다. 모두 다른 수조로 옮겨 부화를 기다렸다.
부화가 된 명태는 1.5㎜로 작은 물고기의 삶을 시작한다. 모두가 부화에 성공하는 것도 아니고, 운좋게 부화돼 나온 치어도 하루가 다르게 죽어간다. 자손을 대량생산해 살아남는 극소수의 개체로 대를 잇는 게 물고기 종의 생존 전략이다. 야생 바다에서 어미 명태 한마리는 25만~40만개의 알을 낳는다. (명란젓 한 숟갈이 수만 마리다) 알에서 나온 치어는 물에 떠다니다가 다른 물고기의 ‘뻐금’하는 한번의 입놀림에 사라지고, 천운으로 살아남은 극소수만 성어로 성장한다. 해양심층수센터도 매일 아침 죽은 물고기 수백마리를 걷어올린다. 지난달 30일 현재 해양심층수센터에는 4만5000마리가 남았다.(다른 기관에 분양한 일부 제외) 인공수조에서 수정과 부화에 성공해 지금까지 살아남은 것이다.
가장 큰 공로자는 누가 뭐래도 70만5000개의 알을 낳은 첫번째 명태다. 지금 해양심층수센터의 콘크리트 수조를 도는 명태 새끼들 수만마리의 어미다. ‘명태 멸종’이라는 절망의 커튼이 내려지는 가운데 한 줄기 희망의 빛을 미래에 산란한 물고기다.
“그런데 그 공로자는 누구죠?”
“아까 등이 구부러진 그 명태요. 그 녀석이 산란하고 나서도 굉장히 잘 돌아다니고 좋았거든요. 내년에도 충분히 해줄 거라고 봤는데, 좀 안됐습니다. 산란 다 마치고 두어달 전부터 저렇게 등이 구부러졌어요. 안타깝죠.”
미국의 환경저널리스트 폴 그린버그는 <포 피시>에서 “(인간이 말하는) 보전이란 미래에 이용하기 위해 필요했을 뿐이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남북전쟁 당시 북부연방이 경제적 측면에서 노예제도를 반대했던 것처럼, 포경 반대운동이나 어족자원의 보전 노력도 사실은 경제적인 동기에서 비롯됐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해양수산부 등은 수온이 내려가는 오는 11월 명태 치어 4만5000마리 중 일부를 동해에 방류할 계획이다. 수조에 남은 치어들의 경우 30㎝ 이상의 성어까지 자라만 주면 명태 양식의 첫발도 떼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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