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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무상망(長毋相忘)

U블럭 2017. 9. 16. 07:57

장무상망(長毋相忘)

                                                          오른쪽 아래  빨간 인장


長 (길 장) 毋 (말 무,없다)
相 (서로 상) 忘 (잊을 망)

'오랜 세월이 지나도 서로 잊지 말자.'
이 말은 세한도에 인장으로 찍힌 말입니다.

"우선(藕船), 고맙네!
내 결코 잊지 않음세!
우리 서로 오래도록 잊지 마세!"

'장무상망(長毋相忘)'은 추사가 먼저 쓴 것이 아니라
2천 년 전 한나라에서 출토된 와당에서 발견된 글씨입니다.





'생자필멸'이라는 말처럼,
살아있는 것은 모두 쓰러지고 결국에는 사라집니다.
그러나 추사와 그의 제자 이상적이 나눈 그 애절한 마음은 이렇게 

오늘도 살아서 우리를 감동시키고 있습니다.

가장 어려울 때 추사를 생각해 준 사랑하는 제자에게 추사는 세한도를 

주면서 요즘 말로 가볍게 '영원불멸'이라 하지 않고
조용히 마음을 안으로 다스려 '장무상망'이라 표현했습니다.
그래서 그 애절함이 우리의 마음을 흔드는 것입니다.

당신이 외로울 때
힘이 되어줄 사람,
장무상망의 그 사람이
당신에게는 있습니까?

세상을 살면서
"오래도록 서로 잊지 말자"(長毋相忘)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두어 명은 있어야 내 인생은 헛살지 않았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가만히 되돌아 봅니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長毋相忘의 소리를
들을 수 그런 사람인가를...!

 



세한도


추사 김정희 [세한도] 1844년, 국보 180호 수묵화, 23×69.2 cm, 국립중앙박물관작품 보러가기

[세한도()]는 조선후기의 학자 추사() 김정희(,1786〜1856)가 그린 그림이다. 전문화가의 그림이 아니라 선비가 그린 문인화()의 대표작으로 인정받아 대한민국 국보() 180호로 지정되어 있다. 그러나 그림을 본 많은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한다. 초라한 집 한 채와 고목() 몇 그루가 한 겨울 추위 속에 떨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도대체 이 그림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일까?

김정희의 증조부는 조선의 21대 임금인 영조()의 사위였다. 덕분에 김정희는 어린시절부터 남부러울 게 없는 생활을 하였다. 스물 네 살이던 1809년에는 해마다 청()나라에 파견하는 사절단의 부사(使)가 된 아버지를 따라 청()나라의 수도 연경(,지금의 베이징)을 다녀왔다. 이후 청나라 학자들과 교유를 통해 조선 최고의 학자로 성장하였다.

특히 금석학()과 서화() 방면에서 김정희의 명성은 청나라에서도 높았다. 청나라의 지식인들은 김정희와 교유하기를 희망하였고, 김정희의 연구 논문이 나오기를 기다리곤 하였다. 그러나 김정희가 45세 되던 1830년에는 부친 김노경이 전라도 고금도()에 유배되었고,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1840년에는 그 자신마저 제주도()에 유배되었다. 모두가 정치적 투쟁 속에서 빚어진 일들이었다. 평생 고생이란 걸 모르고 살았던 김정희에게 제주도의 유배생활은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게다가 유배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가장 친한 친구 김유근(,1785~1840)의 사망 소식을 듣게 되었고, 또 사랑하는 아내와도 영원히 이별하고 말았다. 반대파들의 박해도 끊이지 않았다. 서울 친구들의 소식도 점차 끊어졌다. 그런 상황에서 김정희는 오직 책을 벗 삼아 지낼 뿐이었다.

김정희의 제자 우선() 이상적(,1804~1865)은 그런 김정희의 심정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있었다. 통역관이었던 이상적은 중국에 사신으로 갈 때마다 최신의 서적들을 구해다 김정희에게 보내주었다. 그것들은 모두 쉽게 구할 수 없는 책들이었다. 그러다 한 번은 연경에 갔던 이상적이 『경세문편()』이란 책을 구해다 보내주었다. 어렵게 구한 책을 권력 있는 사람에게 바쳤다면 출세가 보장되었을 텐데, 이상적은 바다 멀리 유배되어 아무 힘도 없는 김정희에게 보내주었던 것이다. 그 책을 받은 김정희는 가슴 깊은 곳에서 밀려오는 뭉클한 감정에 눈물짓고 말았다.

연경에 갔던 이상적이 유배 중인 김정희에게 보내준『경세문편』

유배가기 전이나 유배간 뒤나 언제나 변함없이 자신을 대하고 있는 이상적의 행동을 보면서 김정희는 문득 『논어()』의 한 구절을 떠올렸다. 「자한()」편의 ‘세한연후지송백지후조()’라는 구절이었다. ‘겨울이 되어서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는 의미이다. 공자()가 겨울이 되어 소나무나 잣나무가 시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느꼈듯이, 김정희 자신도 어려운 지경을 만나고 나서야 진정한 친구의 의미를 알게 되었던 것이다. 김정희는 이상적이야말로 공자가 인정했던 송백()과 같은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다. 무언가 선물을 하고 싶었지만 바다 멀리 유배된 신세에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이상적의 뒤를 봐줄 수도 없었고, 그에게 돈으로 보답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할 수 있는 거라곤 자신의 마음을 전하는 것뿐이었다. 그 때 김정희가 떠올린 것은 송()나라 소동파()가 그린 [언송도()]라는 그림이었다.

소동파가 혜주()로 유배()되었을 때의 일이다. 어느 날 소동파의 어린 아들이 부친을 위로하기 그 먼 곳까지 찾아왔다. 어린 아들의 방문에 너무도 기뻤던 소동파는 아들을 위해 [언송도]라는 그림 한 폭 그리고, 아들을 칭찬하는 글을 썼다. 하지만 [언송도] 그림은 전해오지 않았고, 소동파가 쓴 글씨만 남아 있었는데 옹방강이 소장하고 있었다. 연경에 갔을 때 옹방강의 서재를 방문했던 김정희는 그곳에서 소동파가 [언송도]에 쓴 글씨를 보았던 것이다.

이상적이 보내준 책을 받아든 김정희는 소동파를 생각했다. 혜주로 유배되었던 소동파의 상황과 제주도로 유배된 자신의 상황이 비슷했다. 소동파를 위로하기 위해 멀리 찾아온 어린 아들의 마음이나 멀리서 어렵게 책을 구해다 자신에게 보내준 이상적의 의리나 비슷했다. 소동파가 [언송도]를 그렸듯이, 김정희는 자신만의 [언송도]를 그리기로 했다. 붓을 든 김정희는 자신의 처지와 이상적의 의리를 비유한 그림을 그려나갔다. 창문하나 그려진 조그만 집 하나, 앙상한 고목의 가지에 듬성듬성 잎을 매달고 그 집에 비스듬히 기댄 소나무 하나, 그리고 잣나무 몇 그루를 그렸다. 눈이 내린 흔적도 없지만 바라보기만 해도 한기가 느껴질 정도로 쓸쓸하고 썰렁했다. 김정희는 또 다른 종이 위에 칸을 치고 글씨를 써 내려갔다. 이상적의 의리를 칭찬하며 겨울에도 늘 푸른 소나무와 잣나무에 비유하는 내용이었다.

세한도에 찍혀있는 ‘장무상망()’ 인장

그림을 마친 김정희는 ‘세한도()’라는 그림의 제목과 함께 ‘우선시상()’이라고 썼다. 우선()은 이상적의 호()였다. ‘이상적은 감상하게나!’라는 의미였다. 그림을 마친 김정희는 마지막으로 인장을 하나 찍었다. ‘장무상망()’이라는 인장이었다. ‘오래도록 서로 잊지 말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나는 그대의 그 마음을 오래도록 잊지 않겠네. 그대 또한 나를 잊지 말게나. 고맙네. 우선()!

이렇게 그려진 [세한도]는 이상적에게 전달되었고, 이상적은 중국 연경으로 사신가는 길에 [세한도]를 가지고 갔다. 이상적의 중국 친구들은 그림을 보자마자 앞 다투어 이상적의 의리에 감동하고 김정희의 처지를 안타까워하는 글을 지어주었다. [세한도]에 담겨 있는 표면적인 의미는 이상적의 의리에 감동한 김정희의 마음을 형상화한 것이다. 김정희를 감동시킨 그 의리와 절개는 조선 지식인의 핏속에 면면이 이어져온 조선인의 의리이자 절개였다. 김정희는 그것을 누구나 느낄 수 있는 보편적인 감정으로 변환시켜 [세한도]에 담아냈던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세한도 [歲寒圖] - 추사 김정희 (한국미술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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