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황우석

U블럭 2018. 1. 28. 15:43

본 기사는 월간조선 2월호(2018년)에 게재된 것입니다..

  

 

 

 http://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ctcd=E&nNewsNumb=201802100010



 ⊙ 미 네이비실의 특수부대 ‘데브그루’ 현재 한국 체류중… 특수작전용 개 세 마리 복제해 줘
⊙ 미 연방수사국과 마약단속국에 한국의 마약 탐지견 ‘키라’ 30마리 복제해 줘
⊙ 주한 중국대사 수암생명공학연구원 방문… “중국의 영도(領導)들이 삼성전자, 포스코보다 이곳을 더 보고 싶어한다”고 부탁
⊙ 개 한 마리 복제에 13만 달러… 자동차산업보다 부가가치 커
⊙ 줄기세포 이용한 화장품 개발… 한국에선 팔기 싫어 미국·프랑스·UAE에서만 판매
⊙ “시베리아에서 채취한 자궁 속 매머드로 획기적인 결과 내… 곧 논문 발표할 것”
⊙ 모두가 날 사기꾼 취급할 때 ‘수암’과 김문수 전 경기도 지사만이 날 믿어 줘
⊙ 우리 생명윤리법은 줄기세포 연구 막는 것… 이건희 회장 줄기세포만 떼내 보관했어도 회복시킬 수 있었다
⊙ 한국특허청이 무시한 1번 줄기세포, 캐나다·미국·EU 등에서 자발적으로 특허 내 줘
⊙ 한국에서 외면당할 때 카다피의 아들이 초청해 리비아에서 줄기세포 연구 도와줬다

  수암바이오텍(수암생명공학연구원)은 서울시 구로구 경인로 64번지, 대로변에 있다. 2006년 완공돼 2007년 1월 문을 열었다. 올해로 11년째를 맞게 되는 연구원의 외관은 화려하거나 웅장하지 않았지만 내실 있고 견고해 보였다. 원래 골조(骨組)가 다 된 건물을 박병수 이사장이 다시 헐고 건축했다고 한다. ‘수암’은 박 이사장의 호(號)다.
  
  연구원 로비에 낯익은 인물이 서 있었다. 서울대 1호 석좌교수에서 서울대 1호 파면교수로, 영욕(榮辱)의 극단을 맛본 황우석(黃禹錫·65) 박사였다. 그는 수암바이오텍의 CTO라는 직책을 갖고 있다. 황 박사는 얼굴 곳곳에 반창고를 붙이고 있었다. 일행을 맞으려 피부미용 시술을 했는데 아직 남은 흔적을 감추려 붙였다는 것이다.
  
  황 박사는 2006년 서울대에서 쫓겨난 뒤 경기도 용인과 서울 구로동 등에서 자신과 함께 서울대를 나온 연구원 20여 명과 동물실험을 하다 주민 항의를 받고 쫓겨났다. 오갈 데 없는 그를 박병수 이사장이 연구원을 설립하고 그를 원장으로 영입해 연구할 공간과 먹고살 자금을 지원했다. 각박한 세상에 가히 ‘생명의 은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2005년 12월 16일 황우석 박사의 기자회견에 취재진이 몰려든 모습. 2005년 11월 22일 MBC PD수첩은 황우석 신화의 난자 의혹 편에서 연구에 사용된 난자의 출처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나와 황 박사의 만남은 이날이 처음이지만 인연이 없다고 할 수 없다. 2005년 11월 MBC PD수첩의 폭로로 시작된 논문조작 파문이 계기였다. 《조선일보》 사회부 기자로 근무하던 내게 당시 편집국장은 이런 명령을 내린 것이었다. 
  
  “줄기세포 조작 논란이 굉장한 뉴스인데 도무지 기사를 내가 읽어도 이해하기 힘드니 당신이 데스크를 맡으라.”
  
  당시 《조선일보》에서 이 기사를 다룬 사람은 김철중 의학박사와 서울대 동물학과 출신의 이영완 기자였다. 과학도 둘이 전문지식을 뽐내며 기사를 작성했으나 그것은 일반 독자는 물론 기자들에게도 난해하기 그지없었다. 나는 중학교 졸업 수준의 독자들도 읽으면 납득이 갈 수 있는 기사를 쓰자고 했고 그때부터 《조선일보》의 기사는 맥을 잡아 갔다.
  
  당시 MBC와 《한겨레》 등은 ‘연구 윤리’에 초점을 맞춰 황 박사를 맹공했고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등은 ‘연구에 다소 흠결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로 인해 황 박사와 그 연구팀의 결실까지 훼손할 수 없으며 세계 최고 수준으로 도약할 수 있는 줄기세포 연구 자체는 보호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하회(下回)는 주지하다시피 내 희망과 달랐다.
  
  ‘윤리’라는 말만 들으면 주자(朱子)도 혀를 내두를 만큼 엄격한 도학자(道學者)임을 자처하는-실상은 그렇지 않지만-한국인들은 과거 유(有)를 무(無)로 만든 것처럼 황 박사를 도륙냈고 그로 인해 줄기세포라는 말은 사기꾼과 동의어처럼 취급됐다. 그 사건 후 20년이 지난 지금 돌이켜보면 우리가 스스로 먹거리를 내던졌음을 깨달을 것이다.
  
  그렇다면 윤리 수준이라도 향상됐어야 하는데 오히려 20년 전보다 후퇴했으면 후퇴했지 별 진전도 없어 보인다. 이런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 나는 독자들과 함께 ‘황우석 사태’를 간략히 되돌아보고자 한다. 과거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아야 현재 황 박사가 진행하고 있는 연구의 경중(輕重)과 그 의미를 간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황 박사는 1953년 1월 29일 충청남도 부여에서 태어났다. 동물복제로 유명해지기 전 황 박사는 서울대 수의대의 교수로 동물과 관련된 TV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인지도를 높였다. TV 프로그램에서 소의 건강 상태를 알아본다면서 직접 소의 항문으로 팔뚝 전체를 집어넣어 대변을 채취하는, 교수로서는 파격적인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1999년 2월 19일 황우석 박사가 경기도 화성 대은행목장에서 복제 송아지 ‘영롱이’에게 우유를 먹이고 있다(좌). 1999년 4월 2일 황우석 박사가 체세포 복제 기술로 태어난 지 6일째 된 토종 한우 송아지 ‘진이’를 안아주고 있다(우).
  황 박사는 1990년대 중·후반, 해외의 복제동물 연구와 맞물려, 핵이식 복제소 등을 성공시키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1990년대 후반 영국에서 복제양 ‘돌리’를 만드는 데 성공했을 때는 국내 매체들이 몰려가 출연을 부탁하기도 했다. 그 뒤 줄기세포 연구로 1999년에 젖소 ‘영롱이’를 체세포 복제로 만들었다고 발표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당시 우리는 IMF 외환위기로 국가가 부도 나 모두가 침울해하고 있을 때였다. 뭔가 국민들에게 희망을 줄 전기(轉機)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이때 김대중 정부가 각 분야에서 두드러진 사람을 ‘신지식인’으로 선정해 영웅을 만들었는데 때마춰 황 박사 역시 복제동물 연구의 선구자로서 국민적인 인기와 관심을 얻게 된 것이다.
  
  황 박사 인생에서 절정기는 2004년이었다. 그해 2월부터 3월 사이 황 박사는 과학계에서 신뢰도가 가장 높은 〈사이언스〉지에 인간 체세포를 이용한 배아줄기세포 배양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그로 인해 줄기세포 기술은 대한민국의 새로운 성장동력일 뿐 아니라 전 세계 불치병과 난치병 환자들에게 희망을 주기에 충분했다.
  
  《사이언스》지에 배아줄기세포 논문을 발표한 이후 해외에서 그를 영입하려는 시도가 많았는데 황 박사는 국민들을 감동시킬 한마디를 했다. 
  
  “외국의 좋은 조건을 마다하고 국내에 남아 연구를 계속하겠다.”
  
  그 말 한마디로 황 박사는 영웅이 됐고 위인전까지 나왔다. 인기가 백범 김구 선생, 충무공 이순신 장군, 세종대왕 등에 버금갈 정도였다.
  
  이 시기 황우석에 대한 지지는 절대적이었다. 대한항공에서는 황 박사에게 평생 퍼스트 클래스를 무료로 지원해 주겠다고도 했고, 일부 국회의원들은 황 박사에게만큼은 영수증 없이도 연구비를 지원하는 특혜를 부여하자고 했으며 2005년 《사이언스》지 논문 발표 이후에는 아예 최중요 인물로 대통령급 경호를 경찰에서 직접 할 정도였다.
  
  황 박사는 대중을 환호케 하는 연기력도 남달랐다. 2005년 7월 26일 그는 KBS 열린음악회에서 클론 공연 다음 차례에 등장하여 “열린음악회에 출연해 휠체어 댄스를 선보인 가수 강원래를 벌떡 일으켜 과거의 화려한 몸놀림을 다음 열린음악회에서는 볼 수 있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거의 예수 그리스도가 했던 것과 비슷한 퍼포먼스였다.
  
2005년 8월 3일 황우석 박사가 세계 최초로 탄생된 복제 개를 안고 있다. 이날 황 박사는 ‘스너피’라는 아프간하운드 종의 개를 복제했다고 발표했다.
  황 박사는 2005년 8월 ‘스너피’라는 아프간하운드 종의 개를 복제했다고 발표했다. 당시 열린우리당이 바이오산업의 상징으로 황 박사를 내세웠으며 노무현 대통령까지 직접 황 박사의 연구실을 방문하기도 했다. 영장류 복제와 줄기세포 연구 대가(大家) 제럴드 섀튼 피츠버그 대학교수가 황 박사와의 공동연구를 선언하자 그의 인기는 절정에 달했다.
  
  황 박사의 몰락을 가져온 것은 2005년 11월 22일 MBC PD수첩이 〈황우석 신화의 난자 의혹〉편에서 연구에 사용된 난자의 출처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면서부터였다. PD수첩은 난자 채취 과정에 불법행위가 있었다고 했는데 난자 제공자에게 금품이 전달됐고 일부 난자는 연구실의 여자 연구원들을 상대로 채집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2005년 12월 23일 황우석 박사가 서울대 수의대 정문에서 교수직 사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05년 11월 27일 노무현 전 대통령은 청와대 홈페이지에 기고한 ‘줄기세포 관련 언론보도에 대한 여론을 보며’라는 글을 통해 “관용을 모르는 우리 사회의 모습이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MBC 보도 직후 황 박사는 기자회견을 열고 사실을 시인하며 공직에서 사퇴했다. 2005년 11월 27일 노무현 전 대통령은 청와대 홈페이지에 기고한 ‘줄기세포 관련 언론보도에 대한 여론을 보며’라는 글을 통해 “관용을 모르는 우리 사회의 모습이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그렇게 마무리될 것 같은 황 박사 사태 2탄이 터졌다. 이번엔 과학도들이었다.
  
  2005년 12월 5일 새벽에 ‘anony-mous’라는 닉네임을 사용하는 유저가 BRIC(포항공대 생물학정보센터) 게시판에 황 박사의 논문에 실린 사진 몇몇이 조작되었다고 주장하는 글을 썼다. 이 주장을 요약하자면 “(황 박사의) 논문을 무료로 볼 수 없어 아쉬운 대로 부록만 봤는데, 똑같은 사진이 몇 개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이었다.
  
  또다른 과학도가 논문의 사진을 분석한 결과 같은 세포 사진을 다른 세포인 것처럼 올렸음이 확인됐다. 처음에는 너무 어이가 없는 일이어서 해당 전공자들조차 “황우석이 바보도 아니고, 저런 수준 낮은 조작을 하겠냐? 당연히 그냥 실수였겠지”라는 반응이 많았다. 그렇지만 불행하게도 조작된 논문은 그 뒤에도 나타났고 결정적 증언이 나왔다.
  
  황 박사에게 줄기세포를 제공했던 미즈메디 병원의 노성일 이사장이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체세포 줄기세포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폭탄 발언을 해 버린 것이다. 여론은 다시 들끓었고 마침내 서울대가 자체 조사를 벌인 결과 황 박사는 교수직에서 파면되고 말았다. 이 장황한 과정을 쉽게 보여주기 위해 황 박사 사태를 요약한 일지(日誌)를 덧붙인다.
  
황우석 박사의 주요 약력
  
  1977년    서울대학교 수의학과 졸업
  1979년    서울대학교 임상수의학 석사
  1982년    서울대학교 임상수의학 박사
  1984년    일본 홋카이도(北海道)대학교 객원연구원
  1986년    서울대학교 전임강사
  1987년    서울대학교 조교수
  1993년    서울대학교 수의학과 부교수
  1997년    서울대학교 수의학과 교수
  1997년    서울대학교 부속동물병원 원장 수의학과
  1999년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부학장
  2004년    서울대학교 석좌교수
  2005년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학장 선출
  2006년    서울대에서 파면당함
  2006년    7월 수암생명공학연구원 설립
  2008년    5월 에이치바이온 대표이사
  2009년    경기도-황우석, 바이오연구협력 MOU 체결, 2009 장영실 국제과학문화상 대상 수상
  
  
  황우석 박사의 주요 연구 성과
  
  1993년    대한민국 최초 체외수정란 시험관 송아지 생산
  1995년    대한민국 최초 할구 핵이식 송아지 생산
  1999년    2월 국내 최초 체세포 복제 젖소 영롱이 생산
  1999년    4월 체세포 복제 한우 진이 생산
  2002년    대한민국 최초 GFP 형질전환 복제돼지 생산
  2003년    대한민국 최초 hDAF 형질전환 복제돼지 생산
  2004년    세계 최초 체세포 복제유래 인간 배아줄기세포 확립(2006년 1월 12일 《사이언스》가 직권 취소). “Evidence of A Pluripotent Human Embryonic Stem Cell Line Derived From a Cloned Blastocyst,” Science, 2004
  2005년    세계 최초 환자 맞춤형 배아줄기세포 확립(2006년 1월 12일 《사이언스》가 직권 취소). “Patient-specific embryonic stem cells derived from human SCNT blastocysts,” Science, 2005
  2005년    8월 세계 최초 아프간하운드종 복제개 스너피 생산.
  
  
  황우석 박사의 수상 경력
  
  1995년    대한수의학회 미원수의과학상
  1997년    과총 우수과학기술논문상
  1999년    과학기술부 이달의 과학자상
  2000년    홍조근정훈장
  2000년    국회과학기술상
  2000년    국회과학기술연구회 올해의 과학기술상
  2001년    세종문화상 대통령상 수상
  2002년    동아일보-한국과학문화재단 주최 제1회 닮고 싶고 되고 싶은 과학기술인
  2002년    제51회 서울시문화상 생명과학부문
  2004년    한국을 빛낸 사람들 선정
  2004년    과학기술부-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대한민국 최고과학기술인상
  2004년    과학기술인최고훈장 창조장
  2004년    제22회 정진기언론문화상 과학기술연구부문
  2004년    동아일보 선정 ‘2004 올해의 인물’
  2005년    잡지 《에스콰이어》 선정 ‘한국을 빛낸 10명의 남성’
  2005년    제16회 상허대상
  2005년    미국 유전학정책연구소 국제공로상
  2005년    미국 유전학정책연구소 글로벌업적상
  2005년    과학기술부 선정 제1회 최고과학자 (이후 박탈)
  2005년    한국 이미지 디딤돌상
  2005년    제19회 인촌상 자연과학부문
  2009년    제11회 장영실 국제과학문화상 수상
  이런 황우석 박사가 수암생명공학연구원에 은거한 지 정확히 10년 뒤인 2007년 《월간조선》 8월호에 등장했다. 제목은 ‘언론에 처음 공개되는 황우석 박사의 수암생명공학연구원’이며 큰 타이틀은 ‘미국이 실패했던 애완견 복제 세계 최초로 성공, 티베트 마스티프 등 36마리 복제’였다.
  
  그로부터 다시 10년이 지난 2017년 12월 19일 황 박사는 세 명의 기업인과 함께 《월간조선》 편집장으로 일하는 나를 다시 연구원으로 불렀으니 비록 초면(初面)이기는 하나 그와 나의 인연을 가볍다 여기지는 못할 것이다. 처음에 나는 황 박사와의 만남이 취재를 전제로 하지 않은 것이어서 그의 화려한 언변을 전부 기억하지 못할까 두려웠다.
  
  그러다 수첩을 꺼내 들고 그의 말을 받아 적었으며 나중에는 카메라까지 꺼내 그의 얼굴과 그가 대리모 견에게 인공수정하는 장면, 제왕절개수술로 갓 태어난 강아지를 꺼내는 장면까지를 촬영했다. 만일 황 박사가 ‘보도 금지’를 목적으로 했었다면 이런 행동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다만 그는 몇 가지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만 “나중에 써 달라”고 했다.
  
  다음은 《월간조선》 2007년 8월호에 실린 황우석 박사 보도의 전문이다.
 

  지난 2007년 1월 문을 연 黃禹錫(황우석) 박사의 수암생명공학연구원(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소재) 내부가 月刊朝鮮에 의해 최초로 공개됐다. 이 연구소는 박병수 수암재단 이사장이 2006년 말 설립하여 황우석 박사를 원장으로 영입했다. 황 박사는 이곳에서 자신의 서울대 수의학과 연구원팀과 함께 동물 복제 연구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연구원의 규모는 지상 2층에 연면적 약 700m². 황 박사는 2006년 4월 서울대에서 파면된 후 그를 따르던 서울대 연구원 20여 명과 여러 곳을 전전하며 연구활동을 진행했다. 서울 구로동의 어느 건물에 실험실을 차리고 동물실험을 하다 주민들의 항의를 받고 쫓겨난 적도 있다고 한다.
  
  이 연구원의 조용석 사무국장은 취재진을 정문 옆에 있는 분만실로 안내했다. 이곳에서 대리모견들이 복제 강아지를 분만한다. 분만실에 들어가기 위해서 멸균 처리된 슬리퍼를 신고, 수입한 손 세정제로 손을 닦아야 했다. 300mL 손 세정제 한 통이 12만원이라고 한다. 내부에는 강아지 인큐베이터 두 대가 놓여 있어, 마치 산부인과에 들어온 것 같았다.
  
  분만실 한쪽에는 골든 리트리버 한 마리가 가쁜 숨을 쉬고 있었다. 분만이 임박해 신경이 예민해져 있어 담요로 가려 놓았다. 조용석 사무국장은 “어미 개의 배 속에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개가 들어 있다”고 설명했다. 분만실 바닥엔 온돌이 깔려 있었다.
  
  대리모견이 있는 옆방에는 복제된 티베트 마스티프 새끼 10여 마리가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복제견들은 지난 4월 2일부터 5월 3일까지 모두 17마리가 태어났다. 티베트 마스티프는 일명 ‘사자 개’로 成犬(성견)이 됐을 때 몸무게가 80~100kg이 넘는다. 연구원이 새끼 마스티프 두 마리를 꺼내 왔다. 새끼들은 조심스럽게 다가와 일행의 손을 핥았다.
  
  분만실 바깥으로 나가자 연구원 앞뜰 사육장에 있는 개 10여 마리가 일제히 짖어 댔다. 분만실에 있는 마스티프 새끼들처럼 이들도 모두 복제견이었다. 복제견은 비글이 많았고, 골든 리트리버 세 마리가 보였다. 왕성하게 뛰어다니며 짖어 대는 놈들 사이로 까뭇까뭇한 강아지 한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언뜻 보니 시베리안 허스키처럼 보였다. 이 강아지가 얼마 전 미국 전역에서 관심을 끈 ‘미씨’라는 복제견이다.
  
  지난 5월 21일 오전 미국 전역에 생중계된 ABC 방송의 ‘굿모닝 아메리카’라는 뉴스 프로그램에 복제견 미씨 세 마리가 출연했다. 당시 미국 바이오 아트社(사) 루 호손 사장은 방송에 나와 “한국의 수암 연구팀이 10년간 미국에서 성공하지 못했던 ‘미씨’ 복제에 성공했다”고 말했다.
  
  미씨는 시베리안 허스키와 보더 콜리종의 혼혈종으로 미국 아폴로 그룹 회장인 존 스펄링 박사의 애완견 이름이다. 존 스펄링 박사는 자신의 애완견 미씨가 죽을 것을 대비해 1997년부터 미씨 복제 프로젝트를 시작, 텍사스 A&M 대학에 370만 달러를 기부했다. 이 대학 과학자들이 미씨 복제 연구에 나섰으나 실패했다.
  
  이렇게 되자 존 스펄링 박사는 자신이 직접 동물 복제 회사를 설립하고 수백만 달러를 투자하여 복제 연구를 했지만 역시 실패했다. 2002년 미씨가 죽자 존 스펄링 회장은 미씨 세포를 유전자 은행에 동결 보관해 왔다. 존 스펄링 회장은 지난해 8월 1일 미국 바이오 아트사를 통해 황우석 박사와 공동 연구계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미씨 복제는 쉽지 않았다. 동결 보관된 지 6년이 지난 미씨의 세포 보관 상태가 양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악전고투 끝에 황 박사팀은 지난해 9월 27일 미씨 복제를 위한 첫 실험에 들어가 임신에 성공했고, 추가 실험에서도 연이어 임신을 확인했다. 지난해 12월 1일과 4일에 모두 다섯 마리의 복제 미씨가 태어났다. 처음 태어난 놈은 하루 만에 죽었지만, 나머지 네 마리는 모두 건강했다. 조용석 사무국장의 설명이다.
  
  “올 2월 존 스펄링 회장은 복제된 미씨를 인도받기 위해 자신의 자가용 비행기를 한국에 보내 태워 갔습니다. 새끼 강아지가 멀미도 안 하고 얼마나 잘 뛰어노는지 다들 놀랐다고 해요. 올해 89세인 스펄링 회장은 복제된 미씨의 재롱부리는 행동이나 목소리가 원래 미씨와 똑같다면서 너무 감격해했습니다. 미국에서 10년간 실패했던 미씨 프로젝트를 저희가 몇 개월 만에 성공한 거라, 한국보다 미국에서 더 난리였습니다.”
  
2005년 12월 12일 황우석 박사가 충남 홍성농장을 방문해 직접 돼지 체세포 복제란 이식수술을 보여주고 있다.
  《뉴욕 타임스》는 지난 5월 21일 미씨 복제 성공 기사를 크게 보도했다. 이 신문은 “황우석 박사와 일하는 것이 논란의 여지가 있다(controversial)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황 박사는 개 복제 분야에서 최고(the best)이며 이는 검증을 받았다”고 말한 루 호손 사장의 말을 인용했다.
  
  조용석 사무국장에게 지금까지 연구원 내부와 활동에 대해서 공개하지 않은 이유를 묻자 이렇게 답했다.
  
  “지난 몇 년간 일련의 사태를 겪으면서 우리는 충격을 많이 받았습니다. 이 먼 곳 산속으로 와서 새로운 마음으로 연구에 전력투구하고 있어요. 모든 것을 결과로 보여주자는 뜻이었기 때문에 외부와의 인터뷰 등은 일절 사양하고 있습니다. 미씨 복제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미국에서 보도한 것이 외신을 통해 한국에 알려진 겁니다.”
  
  국민들이 황우석 박사가 지금 어떤 연구를 하는지 궁금해한다고 하자 “지금은 말할 게 별로 없다. 오직 결과로만 말하겠다는 생각”이라고 했다. 
  
  현재 수암연구소에서는 동물 복제 외에도 여러 연구가 진행 중이라고 한다. 황 박사의 목표였던 인간 체세포 복제 배아·줄기세포 분야는 현재 연구가 중단된 상태이고, 연구소에서는 배아를 만들어 내는 기술과 유전자 조작 기술을 결합시켜 ‘질병 모델 동물’을 개발하고 있단다. 관계자는 “정확히 이름은 댈 수 없지만, 큰 동물로 연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질병 모델 동물은 사람의 질병 조절 유전자를 이식한 동물이다. 사람의 질병 조절 유전자를 동물의 체세포에 이식하면, 99%는 동물의 유전자지만 1%만 사람의 질병 유전자를 가지게 된다. 이렇게 태어난 동물을 대상으로 해당 질병에 대해 다양한 실험을 한다는 것이다. 조 국장의 설명이다.
  
  “특수단백질을 생산하는 특수기능 보유 동물도 만들고 있어요. 특수한 유전자를 해당 동물에 삽입시켜서 그 체세포를 복제하면, 특수한 기능을 가진 동물이 나오는 거죠. 예를 들면, 치료제로 많이 쓰이고 있는 인터페론을 생산하는 동물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정문 왼편의 클린 룸에 들어가기 위해서 위생복으로 갈아입고 에어 샤워를 했다. 클린 룸에서는 각종 동물의 복제가 이뤄진다. 클린 룸 안에는 10여 대의 전자 현미경이 있었고, 한쪽에는 세포 배양실이 있었다. 이곳에서는 각종 복제 동물들의 세포 배양과 보관을 하고 있단다. 클린 룸을 나오니 문 밖에 연구원들의 시간표가 적혀 있었다. 과거 황 박사 팀의 스케줄을 ‘월화수목금금금’이라고 했는데, 현재도 마찬가지였다.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매일 연구와 수술 스케줄이 적혀 있었다. 일요일 오후 몇 시간이 비어 있었는데, 연구원 중 누군가 사람의 웃는 모습을 그려 놨다. ‘이때가 거의 유일하게 쉬는 시간이구나’라고 짐작했다. 클린 룸 옆의 수술실에서는 동물 복제 등에 필요한 각종 시술이 이뤄진다. 조 국장에 따르면, 매일 15차례의 수술 스케줄이 잡혀 있다고 한다.
  
  2층에는 회의실과 연구실이 모여 있었다. 연구실은 4인실, 8인실 등으로 나눠져 있었고, 실험이나 수술을 하지 않는 연구원들은 자신의 책상에서 연구에 몰두하고 있었다. 인도네시아 출신 연구원 한 명이 우리를 보며 싱긋 웃었다. 조 국장은 “황 박사가 서울대 수의대 교수 시절부터 함께 일하던 연구원”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연구원은 4팀으로 나뉘어 팀별로 서로 다른 연구를 하고 있다고 한다. 서울대에서 나올 때 함께 나온 연구원 20명과 새로운 연구원이 합세하여 현재 연구인력은 총 35명. 연구원들은 연구원에서 연구 활동을 하다 밤 11시가 되면 연구원 아래쪽에 있는 마을의 숙소에서 잠을 자고 오전 7시 반에 출근한다. 따라서 상임이사와 사무국장, 청소부를 제외하면 외부 세계와는 거의 단절되어 있는 셈이다.
  
  황우석 박사는 주로 해외에 체류하다가 가끔씩 연구원에 나타나 수술이나 회의를 주관한다고 한다. 조영석 국장은 황 박사의 근황을 이렇게 소개했다.
  
  “마음 고생이 심한 데다, 제대로 식사를 못해 몸이 많이 수척해졌습니다. 황 박사는 식성이 전형적인 충청도 촌사람이에요. 밥을 많이 먹고 김치나 된장찌개 이런 것을 좋아합니다. 황 박사를 아는 분들은 ‘박사님, 요새도 끼니 때마다 밥 두 그릇 드세요?’라고 묻습니다. 요즘에도 한국에 오면 밥을 두 그릇 뚝딱 비웁니다. 앞에 고기나 다른 반찬이 있어도 된장찌개와 김치만으로 식사를 해요. 이런 식성을 가진 분이 해외 나가서 제대로 식사를 할 수 있겠어요?”
  
  지난해 9월 月刊朝鮮은 “황우석 박사가 태국에 연구 거점을 마련했다”고 단독 보도했다. 조영석 국장과 연구원 인사들은 “황 박사가 태국에 장기 체류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국내에서 황 박사의 전공인 체세포 복제 인간 줄기세포 연구를 하는 게 불가능해졌기 때문에 과거에 친분이 있던 해외 교수들이나 후원자들과 교류를 하고 있는 겁니다. 어떻게 하면 본격적으로 줄기세포 연구를 할 수 있을까 협의를 하고 있는 중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수암생명공학연구원에 따르면 적어도 3년 이내에 미국이나 중국, 러시아, 스페인, 영국 중 한 나라는 줄기세포를 만들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해외에서 발표되는 자료를 보면 미국 캘리포니아주 한 주에서만 체세포 복제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10년간 30억 달러를 투자할 계획이고, 영국은 2006년 이후 10년간 8억 파운드를, EU(유럽연합)는 2007년 이후 총 510억 유로를 지원할 계획이라고 한다. 다시 조영석 국장의 설명이다.
  
  “황우석 박사가 중국의 知人(지인)들에게 들은 얘기를 종합하면, 중국은 2006년 이후 15년 내 생명공학분야 세계 5위를 목표로 중국과학원에서 본격적인 프로젝트 7~8개를 추진하고 있답니다. 스페인은 지하터널을 파서 엄청난 연구실험시설을 만들어 정부가 지원하고 있어요. 일본은 매머드를 복제하기 위해 북극에 가서 유전자를 따 오려고 했는데 실패했어요. 세계 각국이 머리 터지게 싸우고 있는데, 우리는 완전히 손을 놓고 있습니다.”
 

  2011년 세계 특수전(特殊戰) 사상 유례없는 암살작전이 전개됐다. 파키스탄의 수도 이슬라마바드 외곽의 한 부촌(富村) 대저택 옥상에 미군의 헬기 블랙호크 2대가 굉음을 울리며 등장한 것이다. 이곳에는 알카에다의 최고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이 은신하고 있었다. 돌연한 헬기의 등장에 빈 라덴의 병사들이 일제히 집중사격을 하며 저항했다.
  
  이 과정에서 헬기 한 대에 기체 결함이 생겼다. 미군은 정보유출을 막기 위해 고장난 헬기를 폭파해 버렸다. 헬기에서 내린 미군 특수부대 병력은 약 25명이었다. 이들은 알카에다 전사들과 교전을 벌여 빈 라덴을 포함해 22명을 사살하거나 생포하는 전과를 올렸다. 불과 40분 만에 작전을 끝낸 미군은 빈 라덴의 시신을 거두고 곧바로 이륙했다.
  
  작전에 투입된 병사들은 미 해군 특수전 부대인 네이비 실(Navy SEAL)에서도 최정예로 꼽히는 ‘팀 식스(Team Six)’다. 미 육군의 ‘델타포스(Delta Force)’와 함께 대 테러 및 요인암살을 전문으로 한다.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작전을 수행하며 대통령에게 직접 작전결과를 보고한다. ‘팀 식스’는 빈 라덴 체포를 위해 아프가니스탄에 극비 파견됐다.
  
  ‘팀 식스’의 공식명칭은 ‘해군특수전개발그룹(Naval Special Warfare Development Group)’이다. 이를 줄여 흔히 ‘데브그루(DevGru)’라고 부른다. 이 빈 라덴 암살에 동원됐던 데브그루가 극비리에 수개월 전 한국으로 와 적응훈련을 벌이고 있다고 한다. 김정은 참수작전을 위한 것이다. 이 부대와 황우석 박사와는 어떻게 연결되는 것일까.
  
  데브그루가 오사마 빈 라덴 암살 작전을 펼 때 인간이 아닌 동물 한 마리가 유일하게 작전에 참여했다. 데브그루가 가지고 있는 특수 군견(軍犬)이었다. 이 군견이 최근 사망하자 미국은 황 박사에게 군견의 줄기세포를 제공했고 황 박사는 군견을 생전처럼 복제해 미국에 넘겼다. 황 박사가 넘긴 군견의 이름은 ‘브랑코’로 모두 3마리다.
  
  미군은 이 브랑코 세 마리를 특수훈련시켜 본 결과 ‘오리지널과 똑같다’는 판단을 내리고 3년 후까지 50마리를 더 복제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런가 하면 미국 FBI(연방수사국)와 DEA(마약단속국)에서도 한국의 마약탐지견인 ‘키라’를 30마리 복제해 달라고 황 박사에게 의뢰한 상태다. 황 박사와 미국 간의 이 극비 거래에 주목한 나라가 또 있었다. 중국이다.
  
  중국은 개를 경찰, 즉 공안견(公安犬)으로 쓰고 있는데 보유한 마릿수나 훈련의 질에서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중국 공안이 중국 쿤밍(昆明)에 있는 군견관리소로 황 박사를 초청해 다양한 종류의 공안견 복제를 의뢰했으며 이 가운데는 미국 특수부대 데브그루가 황 박사에게 의뢰해 복제했던 특수견도 포함돼 있다는 것이다.
  
  중국은 공안부 산하에 경견(警犬)을 복제하는 것이 국가방위와 치안질서 확립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관심이 큰데 그 뒤에는 일본 유학파 출신인 위홍강 교수라는 인물이 있다는 게 황 박사의 말이다. 일본 가고시마 대학 출신인 위홍강 교수는 독자적인 개 복제 연구를 시도했으나 잇따라 실패하자 쿤밍 기지로 황 박사를 초빙했다.
  
  이 자리에서 황 박사는 중국 공안이 사람의 피 4방울로 범인을 색출해 내는 기술을 봤다며 중국 공안의 범죄수사 기법이 세계적인 수준임을 확인했다고 한다. 이후 황 박사는 국내로 와 한국 경찰 측 수뇌부에게 이런 사실을 전했다. 그 뒤부터 경찰청에서는 매년 2명씩 간부들을 중국 공안에 파견해 교류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의 황 박사에 관한 관심을 보여주는 사례는 또 있다. 어느날 주한 중국대사관으로부터 “대사 부부가 연구소를 견학하고 싶어한다”는 연락이 왔다. 흔쾌히 승낙하고 연구소를 견학시켜 준 뒤 구내식당에서 오찬을 하는데 중국대사가 이런 말을 했다. “중국의 영도(領導)들이 현대차나 삼성전자, 포스코 견학을 이제는 시큰둥해한다.”
  
  무슨 뜻인가 들어 보니 시진핑 주석이 2기째를 맞아 내세운 슬로건이 ‘창신(創新)경제’인데 거기 제일 들어맞는 것이 바로 수암생명공학연구소였다는 것이다. 중국대사 방문 직후 연구소에는 중국 정계의 거물급 인사들의 방문이 잦았는데 그중 대표적인 인물이 전인대 상무위원회 부위원장인 장핑(張平)이었다고 한다.
  
  개 복제에는 상당한 비용이 들어간다고 한다. 황 박사에 따르면 보통 한 마리당 가격이 10만 달러선이다. 웬만한 중형 자동차 몇 대 값이며 가전제품 수백 개를 살 수 있는 것이다. 산업적 측면에서도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분류될 만하다. 다만 군대나 공안에서 의뢰하는 개 복제는 그 10분의 1 수준인 1만3000달러 정도의 비용만 받는다고 한다.
  
2015년 12월 6일 《조선일보》와의 인터뷰 당시 모습. 황 박사는 “사람들의 수명이 늘어나면 (자기 장기를 자신에게 이식하는 ‘오토 트랜스플랜테이션’의) 그 수요도 계속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과 중국 못지않게 황 박사의 개 유전자 복제 기술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나라가 러시아다. 황 박사에 따르면 어느날 주한 러시아대사가 보드카 한 박스를 들고 나타났다. 푸틴 대통령의 밀명을 받고 그가 의뢰한 것은 러시아 시베리아의 동토(凍土)에 수만 년 동안 썩지 않고 싱싱하게 보관돼 있는 매머드 복제를 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매머드는 마지막 빙하기 이전에 멸종됐습니다. 현존하는 과학자 가운데 복제 분야의 최고라고 불리는 하버드 대학의 조지 처치 교수조차 ‘매머드 복제는 불가능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일부 매머드 조직을 이용해 합성 매머드를 2년 안에 만들겠다고 했는데 그 자체가 코미디입니다. 그 말 자체가 나온 뒤부터 임신해도 2년이 걸리거든요. 그런 그가 최근에 제게 공동연구협약을 하자고 제의해 왔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러시아의 5대 여걸이라 불리는 러시아 연방대학 총장과 캐나다·일본·덴마크에서도 공동연구협약을 맺자거나 30년간 독점연구협약을 맺자고 제의했어요. 매머드 복제에 대해서는 논문이 나오기 전까지 자세한 언급을 할 수 없습니다만 체세포를 복제해 내면 아시아 코끼리의 난자와 자궁을 이용할 겁니다.” 
  
  그러면서 황 박사는 이러는 것이었다.
  
  “제가 태어난 곳이 충청도 첩첩산중입니다. 제가 고3일 때 전기가 들어왔어요. 만일 제가 어릴 적에 누군가 ‘달에 갔다오는 것이 가능하다’고 말했다면 분명 그 사람은 사기꾼으로 몰렸을 겁니다. 제가 지금 무엇을 할 수 있다고 했을 때 사기꾼으로 몰리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런데 과학의 길은 기술의 길과 달라요. 누구나 가능하면 기술자지요. 과학자는 사기꾼으로 오해받는 한이 있더라도 불가능한 것을 가능한 것으로 만듭니다. 그게 과학자의 숙명입니다
  
  러시아가 황 박사에게 매머드 복제를 부탁한 것은 황 박사가 복제해 러시아에 건네준 개 두 마리 때문이었다. 러시아 《시베리아 타임스》에 보도된 바에 따르면 황 박사가 복제해 준 개 두 마리는 시베리아의 한 교도소에서 경비견으로 있는데 “상상 이상의 실력을 보여주고 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이 개 두 마리의 이름은 ‘톰’과 ‘잭’이라고 한다.
  
  수암생명공학연구소에서 태어난 톰과 잭은 한국 최고의 탐지견 체세포로 만들어졌다. 모두가 벨기에산 말리노이즈 종으로, 경찰견으로 가장 많이 이용된다. 황 박사는 러시아 사하공화국에 복제한 개 3마리를 선물했는데 이 중 톰과 잭이 사하공화국의 야쿠츠크시에 있는 ‘1호 강제 노동수용소’에 배치됐다. 여기엔 살인범 등 흉악범 720명이 갇혀 있다.
  
  수용소에 배치된 톰과 잭은 3주간의 경비견 훈련 과정에서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뒀다고 한다. 러시아의 최초 복제 경비견인 이들은 수감자 흔적을 정확히 추적하고 낯선 물체와 사람을 냄새로 알아보았으며 장애물을 민첩하게 통과하는 등 뛰어난 실력을 보였다. 교도소 관계자들은 “일반 경비견들이 어려워하는 훈련도 거뜬히 해냈다”고 전하고 있다.
  
황우석 박사가 갓 태어난 개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한국과 연관이 있는 미국·중국·러시아 가운데 황 박사의 개에 가장 큰 관심을 보이는 나라는 역시 미국이다. 앞서 인용한 《월간조선》 2007년 8월호 황 박사 관련 기사에는 ‘미씨’라는 시베리안 허스키와 보더 콜리종의 혼혈종을 황 박사가 복제해 낸 사연이 자세히 언급돼 있다. 미씨는 아폴로 그룹 회장인 존 스펄링 박사의 애완견 이름이다.
  
  황 박사는 미국에서 10년간 실패했던 미씨 프로젝트를 성공시키는 과정을 이번에 밝혔다. “제가 당시 연구원들에게 심한 소리를 많이 했어요. ‘야, 이놈들아. 미국에서 안 되면 우리도 안 된다고 생각하느냐. 이 자리에서 우리가 개 복제에 성공하는 날까지 1주일에 하루만 집에 들어간다.’ 개 복제를 잠깐 소개하자면 착상(着床)시키는 데는 2분이 걸리고 수술만 1시간 반쯤 진행됩니다. 8000번을 했는데도 안 됐어요.
  
  그렇지만 저는 연구원들에게 계속 용기를 불어넣어 줬습니다. ‘두드리지 않는 사람에게 문(門)은 열리지 않는다’고요. 제게 미씨 복제를 맡길 때 스펄링 박사는 ‘한국 정부는 당신을 사기꾼으로 생각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때는 제가 서울대에서 복제한 ‘스너피’마저 가짜로 몰릴 때였어요. 이렇게 미씨 복제에 고심하고 있을 때 제 제자 가운데 미국 뉴욕대 의대에 있던 이유진이라는 여학생을 한국으로 불렀어요. 그 아이 손에서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단 한 번에 성공시켰던 겁니다.”
  
  2009년 미국인 1600명을 상대로 재미있는 투표가 벌어졌다. ‘복제할 만한 가치가 있는 동물’을 순서대로 적어 보라는 것이었다. 이때 1등을 한 것이 2001년 뉴욕 9·11테러 당시 구스만이라는 여성을 구해 낸 명견(名犬) 트레커였다. 미국인들은 사람을 구하다 유독가스를 마시고 오른쪽 뒷다리가 마비된 트레커를 잊지 못한 것이다.
  
  미국은 트레커 복제를 황 박사에게 의뢰했고 황 박사는 복제한 트레커 다섯 마리를 보냈다고 한다. 이 부분에서 황 박사는 자신의 잘나가던 시절을 때론 처연하게, 때론 격앙된 어조(語調)로 회상하는 것이었다. 이 부분은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인터뷰 형식으로 정리해 봤다.
  
  — 서울대 교수 시절이 그리웠습니까.
  
  “제가 잘나갈 때 오만불손하기 그지없었어요. 학교에서 잘린 뒤 아무도 절 찾아오지 않을 때에도 서울대 오연천 총장과 성낙인 총장이 두세 달에 한 번씩 저와 식사를 했는데 그들이 그러더군요. ‘서울대에 있는 2500명의 교수 가운데 쫓겨난 놈 중 살아날 사람이 10명이나 될 거 같으냐? 아마 다 죽을 것이다. 당신(황 박사)이 서울대에 있었으면 이런 연구를 하지 못했을 거다, 이렇게 격려해 주더군요.”
  
  — 복제견들이 국내 강력사건에도 도움이 됐다고 들었습니다.
  
  “제주도에서 여중생이 실종된 일이 일어났습니다. 경찰이 연인원 3만명을 동원했지만 여중생을 찾지 못했습니다. 이때 마지막 수단으로 투입된 것이 ‘퀸’이라는 복제 수색견이었어요.”
  
  — ‘퀸’이 어떻게 여학생을 찾았나요.
  
  “‘퀸’에게 여학생의 세탁물에 남아 있는 에스트라이이올이라는 질의 성분을 맡도록 했지요. 그로부터 정확히 25분 만에 여중생을 찾아낸 겁니다.”
  
  — 고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 사건 때도 동원됐지요.
  
  “그분이 제 친구입니다. 고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북한산에서 자살했을 때도 복제견이 그의 시신을 찾아냈지요. 당시 성 전 회장이 별거하고 청담동에서 살고 있었어요. 그가 잘 때 베던 베개의 냄새를 ‘나로’라는 수색견에게 맡게 한 뒤 현장에 투입했습니다. 성 전 회장의 시신을 ‘나로’가 정확히 20분 만에 발견했습니다.”
  
  — 요즘 한국과 외교 분쟁을 빚고 있는 UAE 왕실도 황 박사와 인연이 깊다고 들었습니다.
  
  “한번은 UAE 왕실에서 개를 복제해 달라고 부탁했어요. 10만 달러와 함께. 그런데 출산하고 보니 장애가 있는 앞다리가 틀어진 개가 태어난 겁니다. 속으로 놀랐지요. 뭐 잘못한 것도 없었는데 그런 개가 태어났으니. 여하간 개를 가져가라고 연락하니 인수단이 27명이나 왔습니다.”
  
  — 장애가 있는 개를 보고 그들이 놀라지 않던가요.
  
  “인수단에서 가장 높은 분이 왕세자 빈이었는데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출신입니다. 그분에게 제가 말했어요. ‘핸디캡이 있는 개가 태어났는데 마음에 안 드시면 비용을 안 받겠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왕세자 빈이 이러시더군요. ‘원래 오리지널이 장애가 있는 개였다’고. 무척 놀라는 표정을 지었어요.” 그러면서 이러시더군요. ‘우리가 찾는 사람이 바로 당신 같은 분’이라고.”
  
  — 그 이후로 UAE 왕실이 황 박사의 든든한 고객이 됐지요.
  
  “이 왕세자 부부는 전쟁 고아 12명을 입양해 해외에 갈 때면 전용기에 태우고 다녔는데 한번은 제가 전용기에 타 봤더니 내부에 강아지 놀이터가 있는 겁니다. 개 사랑이 남달랐지요. 그들은 왕족임에도 불구하고 평민인 저를 부를 때 항상 서(Sir)라는 극존칭을 붙여줬습니다. 요즘은 1년에 한 번씩 초청해 주시고요.”
  
황 박사의 연구실에 있는 복제견들이다.
  황 박사의 ‘개 스토리’는 끝이 없었다. 한번은 호주에서 개 2마리를 복제해 달라고 요청했다. 태어난 개들이 그동안 복제견들과 달리 천방지축이었다. 복제견을 호주로 넘긴 지 몇 년이 지난 뒤였다. 유튜브에 호주의 경주견(競走犬)이 화제를 끌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황 박사의 손에서 태어난 개들이었다. 황 박사가 복제견의 오리지널을 알아봤다.
  
  오리지널은 5년간 세계챔피언을 지냈는데 방광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 부분에서 황 박사는 “국내 대학교수 가운데 복제 과정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나와 ‘복제를 하면 일찍 죽거나 번식능력이 없다’는 식의 잘못된 정보를 퍼트린다”고 비판했다. 황 박사가 지적한 ‘잘 알지도 못하는 교수’들이 주로 드는 사례가 복제양 ‘돌리’다.
  
  — 돌리가 일찍 죽은 것이 빌미가 됐지요?
  
  “복제양 돌리는 3살 반에 죽었는데 사인(死因)이 바이러스성 폐렴이었어요. 특별히 단명한 게 아니고 함께 있던, 자연적으로 태어난 양들도 다 같이 죽었습니다. 그런 내막도 모르면서 복제 동물에 대해 뭐라고 떠드는 게 우리의 현실입니다.”
  
  — 논문 파동으로 주도권을 빼앗긴 세계줄기세포와 장기이식 연구에 대한 미련이 아직도 많습니까.
  
  “과거에 이 분야의 최고는 섀튼 교수가 있는 미국 피츠버그 대학이었습니다. 지금은 무게가 에모리 대학으로 넘어갔어요. 그런데 미국보다 더 무서운 곳이 있습니다.”
  
  — 어딥니까, 그곳이.
  
  “중국의 인민군 301병원입니다. 이 병원은 1년에 1만8000명의 사형수 장기를 임의처분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었습니다. 두 번째는 톈진병원이고 3번째는 옌타이입니다. 2012년에 중국에서도 인권문제가 대두되니 사형수 장기를 임의처분할 수 없게 됐는데 5년간의 유예기간을 뒀지요. 그래서 이번 달(인터뷰가 이뤄진 2017년 12월)에 장기이식이 왕창 이뤄질 겁니다.”
 

  — 사실 가장 좋은 것은 자기 장기를 자신에게 이식하는 오토 트랜스플랜테이션 아닌가요.
  
  “맞습니다. 사람들의 수명이 늘어나면 그 수요도 계속 증가할 겁니다. 이것은 수요공급의 갭이 갈수록 커진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 대안을 찾기 위한 연구가 120년 전부터 시작됐어요. 사람의 주요 장기를 원숭이나 돼지에게서 이식하려는 연구지요.
  
  이때 가장 중요한 문제가 면역거부 반응입니다. 이것을 해결하려면 돼지가 갖고 있는 고유한 면역유전체를 넉 아웃(knock-out)시킨 뒤 휴머노이드 피그를 만들어 내는 겁니다. 이 휴머노이드 피그는 나온 지가 35년이나 됐어요. 그런데도 아직 돼지에게서 인공장기를 만들어 내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제가 서울대에 재직할 때 하루는 서울대병원 교수 6명이 집으로 찾아온 적이 있습니다. 환자 한 명을 떠나보낼 때마다 의사로서의 무력감을 느낀다고 토로하더군요.
  
  그래서 그분들과 제가 제노트랜스플랜테이션(異種이식)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낮에는 정상 업무를 보고 밤 11시부터 새벽 4~5시까지 공부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2002년도에 만들어 낸 것이 CD56이라는, 사람의 면역 유전자가 들어간 돼지였습니다. 모두 118마리를 만들었어요.”
  
  — 그 와중에 줄기세포 사태가 터졌습니다.
  
  “줄기세포 사태가 터지고 제가 대학에서 쫓겨났을 때 돼지들마저 천덕꾸러기 신세가 됐습니다. 서울대에 장문의 편지를 보냈습니다. 돼지를 버릴 작정이라면 차라리 무상 분양해 달라고. 답이 없었어요.”
  
  — 그 돼지들은 다 어떻게 됐습니까.
  
  “나중에 알고 보니 전부 잡아잡수셨다더군요. 제가 돈이 없던 시절이라 대리모 돼지를 구하려면 4개월에 65만원씩 줘야 했습니다. 1주일에 4~6마리가 필요했는데 그것도 큰 부담이었던 시절이지요. 그런데 그때 우연히 길에서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를 만났습니다.”
  
2011년 10월 17일 당시 김문수 경기도지사(왼쪽)와 황우석 박사가 복제에 성공한 코요테를 안고 웃고 있다.
  —참, 이상하게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와 만났습니다.
  
  “사흘 뒤에 김 지사가 도의회의장과 함께 연구소로 오셨습니다. 3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눈 뒤 김 지사께서 이러시더군요. ‘이게 나랍니까? 이건 나라가 아닙니다. 경기도와 공동연구를 하시죠. 경기도가 보유한 사육돼지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해 드리겠습니다. 이렇게 해서 논문 파동 이후인 2009년 경기도와 황 박사가 바이오 연구협력 MOU를 체결했으며 2009 장영실 국제과학문화상 대상을 수상한 것입니다.
  
  당시 김 경기도지사는 ‘논문 파동과 관련, 황 박사의 재판이 진행 중이나 도는 재판 결과에 관계없이 생명공학 분야 연구를 최선을 다해 지원할 것’라고 했고 저도 ‘사회적, 정치적 셈법을 고려하지 않고 연구활동을 지원하는 도와 도민에게 감사 드리며 시간을 주면 연구결과로 답하겠다’라고 화답했습니다. 우리나라보다 한참 뒤처져 있던 미국 하버드 대학이나 호주 시드니 대학이 지금은 우리를 앞지르고 있어요. 하지만 우리는 저력이 있습니다.”
  
  — 황 박사의 연구에 가장 걸림돌이 생명윤리법 아닌가요.
  
  “우리 재벌 가운데도 세대를 이어 유전병을 앓는 분들이 많지요. 유전병은 미토콘드리아를 통해 전이(轉移)됩니다. 지금까지 보고된 유전병은 모두 732종인데 남자의 미토콘드리아를 통해 일어나는 유전병은 없어요.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성행위 후 사정을 하면 수많은 정자들이 난자를 향해 가는데 정자들은 머리에 헬멧 같은 것을 쓰고 있어요. 이게 자궁 속의 액체에 젖으면 퉁퉁 불어서 원래 크기보다 30~40배나 커집니다.
  
  난자 표면에 정자가 닿는 순간, 정자들은 드릴 운동을 해요. 난자의 벽이 콘크리트처럼 단단한데 그것을 뚫기 위해서지요. 드릴 운동을 하면 정자의 헬멧이 툭툭 떨어져 나가 뾰족해집니다. 이런 원리 때문에 유전병은 남성의 미토콘드리아를 통해 전이되지 않고 여성의 미토콘드리아를 통해서만 전이되는데 이걸 치료하는 방법은 심플합니다.
  
  그런데 우리 생명윤리법이 걸림돌이 됩니다. 한국을 제외한 전 세계에서 우리만 특이한 생명윤리법을 갖고 있습니다. 생명윤리법은 원래 영국의 배아보호법을 기초로 한 것인데 영국의 경우 난자 매매에 엄격하지만 1회에 15개의 난자를 배양할 수 있습니다. 그중에서 3개를 착상시키는데 남는 12개의 난자, 그것을 에그 셰어링(Egg-sharing)은 어차피 버려져야 할 운명이기 때문에 과학연구나 의학용으로 쓸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 아예 법 자체를 만들지 않았습니다. 우리만 난자를 채취하면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 그 법을 만든 게 이명박 정부 때였습니다.
  
  “이런 이상한 법이 생명윤리법뿐이 아닙니다. 제가 줄기세포 특허를 갖고 있기 때문에 미국 오리건 주립대학에서 공동연구를 요청해 왔어요. 제 특허가 없으면 연구가 안 되거든요. 그래서 2015년에 중국 베이징대 교수와 미국 오리건 주립대 교수를 제주도로 불렀습니다.
  
  대한항공 조 회장께서 후원을 해 주셔서 정석농장에 시설을 짓고 1년에 8만명씩 줄기세포로 치료할 수 있는 시설을 만들자고 합의했지요. 자본은 우리와 미국이 각각 30%, 중국이 40%를 갖는 걸로 하고요. 그런데 변호사들이 오더니만 안 된대요.”
  
  — 무슨 문제가 있었습니까.
  
  “저는 제주도가 특별자치도여서 이런 치료시설을 짓는 게 가능한 줄 알았는데 그런 걸 만들면 형법에 저촉된다는 겁니다, 하하.”
  
  — 평소 황 박사께서는 “줄기세포만 하지 않았던들 인생이 종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하셨는데.
  
  “줄기세포에는 성체줄기세포와 배아줄기세포가 있습니다. 성체줄기세포는 복부에서 채취하는데 개수가 1억~5억개에 달합니다. 대신 제한이 많아요. 가장 큰 문제는 보관이 쉽지 않다는 겁니다.”
  
2006년 1월 12일 황우석 박사가 기자회견장에서 발언하고 있다. 황 박사는 “배아줄기세포는 무한 증식이 가능”하다며 “분화에 전능성(全能性)이 있다”고 말했다.
  — 그에 비해 배아줄기세포는 장점이 많지요.
  
  “반면 배아줄기세포는 무한 증식이 가능합니다. 분화에 전능성(全能性)이 있다는 뜻입니다. 지금으로부터 28년 전에 미국 위스콘신 대학의 톰슨 박사가 성체줄기세포를 만들어 내며 그것으로 모든 질병을 다 해결하겠다고 했는데 결정적인 장벽에 부닥친 겁니다.
  
  난자 A와 정자 B가 합쳐지면 배아 AB가 되는데 면역거부반응이 생긴 겁니다. 면역거부반응만이었다면 해결책은 간단해요. 난자 속의 핵에서 A를 빼서 복제 배아를 만들면 되거든요. 종교계에선 주님께서 저런 건 하지 말라고 했다고 하지만 저는 성격이 조금 삐딱합니다.”
  
  — 그러려면 당연히 난자가 필요했겠네요.
  
  “미즈메디 병원의 노성일 원장이 난자가 200~300개씩 남아돈다고 했어요. 난자 얻어 와서 딱 해 보니 제대로 배아가 되는 거예요. 그때 서울대 의대 문신용 교수에게 배아를 보여줬더니 첫마디가 ‘사고 쳤구나’ 하는 겁니다.
  
  문 교수가 성일이 형이랑 경기고 선후배인데 수정란 줄기세포를 12개 배양했다고 알려줬습니다. 그래서 셋이서 노 원장은 난자를 배양해서 유전자 분석하고 제가 논문 쓰고 특허를 공동으로 하기로 의기투합했는데 갑자기 노 원장이 이러는 겁니다. ‘너, 내 배양기술 빼 가려는 거지?’ 우리는 서로간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고 노터치하기로 상호 신의와 신뢰의 계약을 맺었어요.”
  
  — 1번 배아줄기세포를 만든 게 2003년 4월이지요.
  
  “2003년 4월에 1번 줄기세포를 만들었고 그래서 노 원장 대신 한양대 생물학과와 연구했고 의사는 연세대 출신이 참여했습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아양한 박사에게 그 사실을 알렸더니 사흘 뒤에 ‘MATCHED’라는 결과를 통보해 줬어요. 극비리에 논문을 내서 《사이언스》지에 보냈는데 케네디 편집장과 3명의 리뷰어만 봐야 했는데 갑자기 섀튼 교수가 찾아와 절 보고 ‘대단한 것을 만들었다며?’라고 묻더라고요. 아마 케네디 편집장이 귀띔을 해 줬겠지요. 섀튼은 한껏 저를 치켜올려 줬어요. ‘섀튼의 시대는 오늘로 끝나고 내일 아침에는 황우석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요. 섀튼이 박종혁과 박을순을 자기 실험실로 보내 달라고 해서 보냈지요. 박종혁이는 손이 약간 꿈뜬데 그 후임으로 간 김선종이는 뚝딱뚝딱 줄기세포를 만들어 냈습니다.
  
  섀튼과 함께 세미나를 했어요. 미국의 록펠러 대학에서 열렸는데 줄기세포를 만드는 것은 황우석이 했으니 각국은 이것으로 후속 연구를 하자고요. 영국은 루게릭병이 많은 나라여서 루게릭병을 연구하기로 하고 18개 질환을 각국에 할당했지요.”
  
  — 바로 그날 악몽이 시작됐습니다.
  
  “최태원 SK회장께서 매년 10억원 정도를 후원해 주셨는데 자기 체면 좀 세워 달라고 해서 세미나를 마치고 급히 귀국하는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뉴욕에서 대한항공을 타고, 그때만 해도 무제한 1등석을 제공해 줬기 때문에 경호원에게 서울에 도착할 때까지 깨우지 말라고 부탁했지요.
  
  그런데 워낙 급한 일이라며 절 깨우는 겁니다. 기장실로 가 보니 청와대에서 텔렉스를 보냈는데 섀튼이 공동연구를 파기했다는 겁니다. 불과 8시간 전에 서로 포옹하고 헤어졌는데 지구가 갑자기 펑크가 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공항에 내리자마자 수많은 기자들이 절 둘러쌌어요.
  
  최태원 회장의 부탁대로 대전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데 문제의 MBC PD수첩이 보도됐습니다. 강성훈 교수가 얼굴이 하얗게 질려 제게 ‘모든 게 다 가짜래요’라고 하더군요. 제가 그래서 말했습니다. ‘가짜는 무슨 가짜야. 우리 거 다 줘 버려.’ 그리고 고려대 법의학과의 황적준 박사가 다음 날 ‘unmatched’라는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1번을 제외한 2번부터 12번까지 모두 미즈메디 줄기세포라는 거였습니다.”
  
  — 그야말로 하늘에서 땅바닥으로 추락했다는 느낌이 들었겠습니다.
  
  “원인은 모르겠지만 치명적 잘못을 범한 거지요. 서울대 교수직을 그만두려고 했는데 사표 수리를 거부하더군요. 진상조사위원회가 구성됐고 제가 자살할 것을 우려해 강제로 서울대 병원에 입원시켰습니다. 병실에 서울대 총장이 ‘기(祈) 쾌유’라는 화분도 보내 주고 병원장은 간부들과 함께 저를 껴안고 등을 토닥이면서 ‘내가 있는데 왜 걱정해’라고 했습니다. 제 와이프는 꺼억꺼억 울고 있었고요. 그 모든 게 비현실적인 풍경 같았어요.”
  
  — 황 박사를 도운 분은 없었습니까.
  
  “양일식 학장과 백선하 교수가 끝까지 내 곁을 지키며 대책회의를 했어요. 백 교수가 딸깍발이 근성이 있는데 황 교수의 실적을 증명하기 위한 전문가 50명의 명단을 만들었어요. 그런데 진상조사위에서는 50명 모두가 배제됐습니다. 뒤통수를 맞은 거지요. 우리가 낸 명단만 싹 빼 버린 거예요.”
  
  — 진상조사위원회가 공정하게 구성되지 못했다는 뜻입니까.
  
  “정명희 서울의대 교수가 진상조사위원장을 맡았습니다. 그분이 독성학을 전공했는데 진상조사위원 9명 가운데 2명은 사표를 냈지요. 약대의 오태기 교수와 농대의 이인원 교수였습니다.
  
  5명은 총장의 최측근이었습니다. 진상조사위원회에서는 원할 경우 1~2회의 재현 기회를 준다고 했는데 위원회에서 부른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21일 후 조사 결과가 발표됐는데 2번 줄기세포부터 다 가짜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1번은 굳게 믿고 있었는데 1번은 처녀생식이라는 겁니다. 한마디로 우연히 생긴 제대로 된 줄기세포가 아니라는 거지요.
  
  진상조사위원회 발표가 있은 지 1주일 뒤에 징계위원회가 열려서 파면이 됐습니다. 1호 석좌교수가 1호 파면교수가 된 거지요.”
  
서울 구로구 수암생명공학연구원에서 연구원들이 매머드 복제 연구를 위한 시료를 살피고 있다. 현재 수암연구소에서는 동물 복제 외에도 여러 연구가 진행 중이라고 한다.
  — 정명희 교수를 그 뒤 재판에서 만났지요?
  
  “정명희 교수는 6개월 뒤에 열린 재판에서 증언을 거부했어요. 그에게 변호사가 ‘처녀생식이라고 말한 근거가 뭐냐’고 물었을 때 정 교수는 ‘근거가 없다’고 했습니다. 어처구니가 없더군요. 정 교수는 ‘너무 흥분한 나머지 하지 말았어야야 할 언급을 했다’고 했습니다. 정 교수가 법정에서 증언을 끝내더니 손을 들고 제 앞으로 와서 90도로 허리를 숙였습니다. 그러면서 이러더군요. ‘황 교수는 이 자리에 피고로 있을 사람이 아닙니다’라고요.”
  
  — 검찰수사도 장기화됐지요.
  
  “제가 서울지검 특수3부 1207호 검사실에서 67일간 조사를 받았어요. 그때 수사본부장이 홍만표씨였습니다. 7년6개월 동안 재판을 받느라 심신이 다 지쳤는데 2011년 7월에 캐나다 정부가 특허증을 보내 왔어요. ‘NT-1’에 대해 ‘우리는 한국 정부와 견해를 달리한다’는 말까지 덧붙여서요. 그 이후로 ‘NT-1’은 유럽연합, 뉴질랜드, 미국에서 차례로 특허를 받았습니다. 제가 후원금 전용(轉用) 혐의를 받았는데 개인적이고 사적인 용도로 혹은 치부(致富)에 사용한 흔적은 없다는 판결을 받았어요. 그래도 횡령은 횡령이라고 하더군요.”
  
  — 캐나다에 이어 미국도 특허를 허가했습니다.
  
  “작년 10월 25일 미국 특허청에서 난데없이 또 하나의 특허를 내 줬습니다. ‘NT-1’이 신경계 전구물질을 유도하는 효과가 있다면서요.”
  
  — 그런데 왜 한국은 특허를 내주지 않았나요.
  
  “제가 12년 동안 옴짝달싹 못했습니다. ‘NT-1’의 특허를 한국 특허청에 신청했는데 실무진은 찬성했지만 진수희 장관, 그분이 평소에는 저를 오빠 오빠하고 불렀는데 특허등록을 거부하고 말았습니다.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벌여 1심 2심 대법원까지 다 이겼는데 대법원 판결이 나오고 1년반이 지나도록 특허등록이 안 됐습니다. 제가 대한민국의 주적(主敵)이 됐다는 걸 그때 알았어요. 그래서 포기하고 있는데 갑자기 보건복지부에서 등록시켜 준다면서 발표를 하더군요. 그날이 최순실이가 검찰 출두하는 날과 같은 시각이었습니다.”
  
  — 국내에 머물지 못하고 해외에 장기체류했는데 어디에 있었습니까.
  
  “중국, 방글라데시 이런 곳들이었습니다. 리비아에도 오래 있었고요.”
  
  — 리비아?
  
  “카다피 국가지도자의 아들이 저를 무척 만나고 싶어했어요. 리비아라는 국가의 앞날이 줄기세포 연구에 달렸다고 생각했대요. 제게 여러가지 호의도 베풀고 연구시설도 마련해 줬습니다. 저도 힘 닿는 대로 도와 드렸고요.”
  
  — 그런데 미국이 카다피를 암살했지요.
  
  “카다피가 암살당하기 직전, 카다피의 아들이 제게 거액을 줬어요. 제가 그를 만나고 나올 때 호위해 주던 사람이 몇 명 있었어요. 액수를 밝히긴 그렇지만 그들에게 돈을 다 줘 버렸어요.”
  
  — 혹시 안 줬으면 어떻게 됐을까요.
  
  “모르죠. 하지만 전 돈이 필요없으니까, 지금 생각해도 다 주길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황 박사와의 만남은 오후 3시에 시작돼 밤 9시가 넘어서야 끝났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어떤 영화나 소설도 황 박사의 삶만큼 드라마틱할 수는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마 그를 더 만나면 더 재미있는 이야기 보따리가 펼쳐질 것 같았다. ‘한여름 밤의 꿈’ 같은 황우석과의 대화가 마무리되면서 우리나라도 도약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그야말로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 같은 시절을 보낸 게 아닐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월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