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임의진

U블럭 2013. 10. 12. 14:26

 

 

 



몸으로 쓴 사랑편지
 
 
목회하고 살 때 일이다. 예배 시간에 느닷없이 “저그요!”하고 누가 손을 높이 들어서 보았더니 진등댁 할매였다. “왜요?” “조퇴할라는디 나 잔 시켜주쇼” “무슨 일이신데요.” “밖에 잔 보시란 말이요. 소낙비가 안 내리능가요.  마당에 빨래도 널어놨고 고추도 뽀슬라고(빻을려고) 팽상에 널어놨당게요.” 설교의 절정부였는데 이하 내용은 죄다 까먹을 수밖에. 학교에서 조퇴는 봤어도 교회에서 조퇴는 처음 보았다. 햇살 쨍쨍한 날 빨래가 보송보송 잘 마를법한 날도 할매는 또다시 조퇴를 감행했다. 마음은 콩밭에 가있는 이런 귀여운 할매들이 주눅 들지 않고 큰소리 높이며 떵떵거리는, 재미난 시골 교회였다. 

 요란하게 찬송가를 부르며 박수를 치는 일도 없고, 아멘을 크게 외치는 일도 없는 조용한 교회. 매 주일 찾아와 내 수염 덥수룩한 꼴을 봐야하는 고충과 쇼맨십 제로인 답답한 목소리를 빼면 스펙터클 어드벤처 흥미 만점인 일상들이 쉼 없이 펼쳐졌다. 젊은 목사의 설교는 기존에 들어왔던 성경 말씀과 정반대에 가까워서 교인들은 뜨악해했다. 축복보다는 감사를, 부요함보다는 자족을, 기적보다는 일상에 집중하자고 설교했다. 열광의 도가니 대신 사랑의 도가니가 되도록 밑불을 지폈다. 불의와 전쟁이 판치는 세상에 정의와 생명, 평화를 이야기하는 것이야말로 방언이요 예언이라 말씀드렸다. 시끄럽게 울며짜며 기도하길 좋아하고, 말쑥한 양복차림 목사를 존경하는 교인들은 다른 교회로 도망치듯 떠나갔다.
 
소음이 걷히자 교회당에 비로소 산새들이 찾아와 지저귀고 풀벌레가 편히 울기 시작했다. 교회를 떠나 임씨로 살면서 띄운 그간 내 시골편지도 이런 실천행의 연장선이었다. 신은 가까이에 계신다. 우리 안에, 사랑 안에.
 



꽃무늬 브라자
 
 
눈을 까뒤집고 살펴보아도 칠십 고령의 할매들 뿐인지라 빨랫줄엔 브래지어, 요짝 말로 브라자가 널리는 일은 가뭄에 콩 나듯 하는 일. 가끔 며느리나 시집간 딸이나 아가씨가 다 된  손녀딸이 찾아와서 며칠 묵고 갈 때나 되어서야 그런 풍경이 가능해진다. 주평리 슈퍼에서 팥 들어간 붕어빵 아이스크림 달콩 사먹고, 어르신들 장기판에 볼만장만하다가 자전거 페달을 밟고 돌아서는데 길갓집 마당에 꽃무늬 브래지어 하나가 미동도 없이 널려있더라. 호랑이도 제 말하면 나타난다더니 즉시 대문을 열고 등장한 그 집 마나님. 해 기울 즈음 저수지까지 운동 다니시는 그 아주머니가 맞다. 알록달록 촌티를 무한 방출하는 몸빼 차림에다가 후줄근하기 이를 데 없는 웃옷... 그런데 저기 널려있는 세련되고 섹시한 브래지어는 무어란 말이냐. 사부랑하게 빨래집게에 물린 브래지어는 마파람에 춤추며 살살 노긋해지고 있더라.

길 끝에 이르러 문득 어머니 속옷이 가물거렸다. 자신의 속옷을 손빨래하고 뒤꼍에 가만히 널어두던 풍경. 어머니의 가슴을 싸맸던 물보랏빛 브래지어... 야코죽이는 지컵도 에이치컵도 아닌 죄고만 언덕 같이 정겹던 어머니 브래지어. 엄마 젖을 물던 기억이 사라진 것처럼 이제 엄마 브래지어도 엄마 냄새까지도 이 세상에 없는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그런 소소한 풍경이 진정 행복한 순간이었음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어버린 시간이로구나.
 
그런데 시위하다 체포된 여성들에게 자살 자해 방지 목적이라며 브래지어를 벗어 내놓으라 했다는 경찰발 황당 뉴스. 방학과 휴가철을 이용한 은밀한 성형수술 얘기. 젖줄기가 말랐으면 모르겠지만 이상 없이 콸콸 솟는대도 자기 아이에게 소젖 분말을 타 먹이는 ‘이상한 나라의 엘리트’ 엄마들 얘기... 이런 얘기들이 요즘 브래지어에 얽힌 이야기의 전부란 게 참 서글프다. 
 

 

지팡이와 유모차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여벌의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도 지니고 다니지 말라 하셨는데, 나는 산에 갈 때 지팡이 하나 몰래살짝 챙겨들고 간다. 여행이 아니라 뭐 산행이니까 눈감아 주시겠지. 변명이 아니라 사막의 수도승들도 지팡이는 기본으로 들고 다녔단다. “말 안 듣는 나귀나 낙타를 다그치는데 쓰고, 뱀을 쫓을 때와 여자를 보호할 때, 죽은 이를 소생시킬 때도 요긴히 사용한답니다.” 사막교부의 삶을 기록한 책엔 이렇게 적혀있더라.

 
내거야 흔한 대나무나 등산용으로 파는 지팡이지만 할머니들은 효자 효녀에게서 선물 받은 옻칠까지 번드르르한 명아주 지팡이를 짚고 다니신다. 민중의 지팡이라는 경찰 아저씨들은 지팡이 대신 몽둥이를 들 때가 많은데, 제발 민주 경찰로 거듭나 주시길. 시골 인심은 푸져서 경찰 아저씨들이 지팡이 짚는 할머니가 버스를 놓쳤을 때 친절하게 태워주는 일도 있다. 아니 적어도 미국 경찰들처럼 수상하다 싶으면 무턱대고 총알부터 발사하지는 않으니 그도 땡큐 베리 머취다.
 
기력이 쇠한 할머니들은 지팡이 대신 유모차를 끌고 나오시기도. 손자 손녀 받아 키운 뒤 창고에서 먼지만 쌓여가던 유모차가 살아나와 부축을 돕는데, 먼 거리가 아니라면 제법 보행에 도움을 주는 모양 같다. 게다가 유모차에 아이가 있는 것처럼 보이니 먼지를 날리던 과속 운전자들도 속도를 줄이는 기색이고... 아이들 대신 호박이랑 양파, 여름엔 수박과 참외가 꼬부랑 할머니께옵서 밀어주는 유모차를 타고 룰루랄라. 지팡이와 유모차가 또다른 다리 한 짝 한 벌인 게다. 세상을 살다보면 누군가 부축을 해주면 고마울 때가 있다. 지진과 원전 폭발로 두 다리 모두 후들거릴 이웃나라 일본 주민들, 지팡이와 유모차로 부축해주고 싶어라. 

 



용감무쌍 지렁이
 
땅의 주인장 중엔 밀짚모자를 눌러쓰고 지평선을 물들이는 농부님네, 땅굴파기 전문가 두더지, 납작 엎드려 심심하게 놀고 먹는 굼벵이, 검은 색깔 자장면 배달부 개미 말고도 흐물흐물 말랑말랑 지렁이가 또 있다. 어두운 그림자의 집에 살고 있으면서도 항상 눈썹을 위로 뜨고 손전등 불빛같이 작은 구멍에 얼굴을 내미는 지렁이. 봄농사 두엄을 내다보면 지렁이 일가족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이런 재미난 이야기도 하나 알고 있지. 학교를 마치고 헐레벌떡 집으로 기어온(달려온, 이라는 말은 지렁이 세상에는 없는 말이란다) 초등학생 꼬맹이 지렁이. 설거지하고 계신 엄마지렁이를 뒤에서 덥석 안고는 “ 아빠는 어디 가셨어요?” 물었단다. 몸을 뒤로 돌린 엄마지렁이, 눈물 콧물 범벅인 얼굴로 이렇게 대답. “네 아빠? 방금 전에 낚시 가셨단다.” 칫, 안 웃으면 바보천치.
 
사람 사는 세상에도 지렁이 같은 사람들이 있다. 뛰는 사람 위에 나는 사람, 기가 막힌 공중부양술. 그런데 추락하여 땅바닥을 기는 사람도 있다. 누군들 허리 꼿꼿하게 펴고 살고 싶지 않겠는가만 지렁이처럼 낮게 엎드려 땅바닥을 기면서 추적하고 눅눅한 세월을 견뎌내는 사람들. 게다가 가끔씩 먹잇감 놀잇감이 되어 붙잡혀가기도 하고, 연두이파리 흔들리는 가로수길 따라 행복한 봄나들이를 꿈꿨건만 고된 농사일로 지쳐 근심조차 천근만근인 신세들. 그러다가 저러가다 참다못해 한번 꿈틀거리면, 지렁이 주제에 그래도 한번 꿈틀대기는 하더라며 우스워라 멸시들을 한다. 날로 코밑이 거뭇거뭇해지는 아이들이 지렁이엄마 지렁이아빠 밑에서 기는 법만 배우고 자랄까봐 내심 걱정스럽다. 하다못해 꿈틀대는 일조차 잊고 산다면 그건 이미 영혼까지 말라비틀어진, 생명 없는 지렁이 아니런가. 낚시 가기 전에, 닭에게 쪼아 먹히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번 꿈틀대보자꾸나. 용감무쌍한 지렁이야! 
 

 

 

 

http://www.sunmoodang.com/ver4/

▲ 임의진

 

 

 

 

 

 

 


“크리스마스이브입니다, 촛불 하나면 충분하지요”


거리에 울려퍼지는 캐럴과 구세군의 자선냄비 종소리, 누가 더 번쩍거리나 내기라도 하듯 하늘 높이 치솟은 트리가 크리스마스를 알리는 계절. 들뜨고 화려한 도시의 크리스마스를 점점 닮아가는 듯 시골 곳곳에도 색색의 십자가가 세워졌지만 남도 땅 언저리 전남 강진군 강진읍 덕남리에 자리잡고 있는 ‘강진 남녘교회’에는 이렇다 할 만한 크리스마스 트리도, 색전구로 만든 십자가도 없다. 기껏 크리스마스 기분을 낸다고 만든 것은 계단 옆 꼬마 전나무에 달아놓은 장식용 벨이 전부.



금방이라도 은은한 종소리가 울려퍼질 것 같은 낡은 종탑과 새하얀 예배당. 30여년 전 그리스정교회 교회양식으로 지어진 남녘교회는 마음 한구석에 추억으로 자리한 옛 시골교회의 모습을 금세 떠올릴 정도로 곳곳에 옛 정취가 남아 있다.


교회라고 해봤자 예배당 한 칸이 전부지만 곳곳에 살뜰함이 묻어난다. 벼락맞은 대추나무로 만들었다는 뒤틀린 십자가는 대단히 현대적이고 추상적이지만 누구라도 성호를 긋고 싶어할 만큼 경건함이 배어난다. 온통 파란색 페인트로 마무리를 한 창틀, 찬바람을 막기 위해 황토로 염색한 커튼, 의자를 없애고 대신 놓은 푹신푹신한 방석. 화려한 스테인드 글라스도, 반짝거리는 황금색 십자가도 없지만 남녘교회의 소박한 예배당은 높이 치솟은 교회 건물이 기독교인들의 신앙심이나 교세를 상징한다는 어리석은 생각을 지우기에 충분하다.


스피커를 타고 갈란테가 부르는 카치니의 아베마리아가 예배당에 은은히 울려퍼지는 지난 22일 주일 아침. 하나님을 뵈러 오는 날이라고 깔끔하게 나들이옷을 차려입은 할머니들이 교회마당으로 하나 둘 들어선다. 신자라고는 30여명이 전부. 강진에서 대대로 살아오며 농사를 지어온 농투성이로 이제는 나이 들어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이 대부분이라 날이 궂으면 주일예배에 참석하는 이들은 줄어든다. 돋보기를 끼고 성경책을 열심히 들여다보는 할머니들 사이로 십자가 앞에 머리를 조아린 까까머리 중학생과 주름진 아저씨도 보인다.


예배시간이 되어 검정색 목사복 대신 황토색 누비 두루마기를 입고 들어선 소탈한 목사를 보자 남녘교회가 소박한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검은 구레나룻과 콧수염을 기른 털털한 모습. 굵은 안경 너머로 보이는 눈빛이 날카로운 목사 임의진(36). 그가 바로 신자들과 함께 오늘의 남녘교회를 가꾼 이다.



3대째 기독교와 인연을 맺고 있는 임목사에게 남녘교회가 갖는 의미는 각별하다. 전도사로 활동하신 할아버지를 이어 평생 가난한 시골 개척교회 목사로 활동한 아버지를 따라 해남과 강진, 광주 등지에서 어린시절을 보낸 임목사에게 30년도 더된 예배당 건물은 옛 추억을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스무 살 무렵부터 밑바닥 삶을 전전하던 임목사는 소외된 자들과 약자들에게 관심을 가지면서 해방신학과 민중신학을 접했다. 한때 서울에서 목회활동을 하기도 했으나 어느날 첨탑도 떨어지고 지붕이 깨진채 버려진 예배당을 보면서 “어차피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이런 곳이 아닐까”하며 95년 강진에 정착했다. 근근히 몇몇 신자들에 의해 사랑방모임처럼 이어지던 목회를 정비하고 통일을 염원하며 ‘남녘교회’라는 이름으로 재창립했다. 97년에는 임목사와 함께 신앙생활을 하고 싶어하는 광주의 기독교인들과 ‘광주 작은교회’를 세웠다. 견우와 직녀가 오작교에서 만나듯 남녘과 북녘이 하나 되게 해달라는 뜻에서 칠월칠석을 교회창립일로 삼았다.


“예수와 하나님을 팔아먹으며 구원을 약속하고 오로지 신자를 늘리는 데 혈안이 된 교회가 우후죽순 늘어나고 있지요. 또 종교가 사회 구원이라는 또다른 기능을 하지 못하고 신자들의 신앙심은 자본에 대한 탐욕으로 비뚤어져 가는 게 우리의 현실 아닙니까”


그래서인가. 남녘교회의 운영방식은 튄다. 광주와 강진의 남녘교회는 공동으로 헌금을 관리하고 큰 행사가 있는 날이면 서로 돕는다. 헌금시간도 따로 없고 십일조는 없앴다. 교회에 나오라며 신자들이나 동네사람들을 ‘귀찮게’ 굴지도 않는다. 새벽 예배와 수요 예배도 없앴다. 교리 중심의 세련된 신학 대신 비유를 들어 설교를 하던 예수의 방식을 취해 수십년이 지나도 늘 똑같은 ‘죽은 설교’ 대신 자신의 경험담을, 지금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이슈를 소재로 ‘이야기 설교’를 한다.


혹자들은 그의 교회운영방식을 급진적이라며 탐탁지 않아 하지만 임목사 역시 예수를 스승 삼아 수행하기를 원한 이로 이기적인 개인의 행복과 안녕 대신 이를 뛰어넘는 ‘사랑’을 전하는 것은 매한가지다. “참다운 사랑은 자기를 넘어서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족을 넘어서야지요. 교회도 넘어서야 합니다. 동네도 넘어서야 합니다. 그게 바로 사랑입니다”


몇 푼 되지 않지만 땅을 딛고 살아온 이들의 값진 헌금을 따로 모아 교회를 바로 세우는 데 쓰고, 번쩍거리는 트리 대신 마음의 양식이 될 수 있는 음악으로 성탄을 축하하려는 젊은 목사와 신자들. 아담한 예배당에 흐르는 그들의 낮은 기도소리 사이로 하늘이 새로 열리고 크리스마스의 진정한 축복이 내려지는 듯했다.



-[취재수첩]‘강진 사람’임의진…고무신 신고 농사 짓는 목사님-


어린 시절 밀레의 ‘만종’을 좋아했고, 자신처럼 아버지를 목사로 둔 에밀리 브론티의 ‘폭풍의 언덕’을 읽고는 감명받아 “여류작가가 되겠다”고 했던 엉뚱한 소년. 고교시절에는 장래희망란에 ‘사람’이라고 써놓았다가 선생님을 놀린다고 혼난 적도 있지만, 여전히 그의 꿈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임의진 목사. ‘어깨춤’이라는 아호 겸 세례명을 갖고 있는 그는 비록 목사가 됐지만 가난한 신자들이 내는 헌금으로 생계를 꾸리고 싶지 않아 직접 한 뙈기의 논을 갈아 농사를 짓고 글을 써서 먹고산다.


‘목사 임의진’이 아니라 검은 고무신에 황토를 가득 묻히고 농사를 짓는 ‘강진 사람 임의진’으로 사람들을 대하고 어울리다보니 150여가구에 이르는 마을 사람들과 친구가 됐다. 불교신자인 할머니의 생신에 초대받아도 기꺼이 자리를 함께 하며 기도를 해주고, 봄이면 상춘곡을 부르며 꽃놀이를 떠난다는 임목사의 삶은 ‘호의호식하는 일부 성직자’들의 삶에 비하면 훨씬 인간적이다. 그는 교회 밖에서도 구원이 가능하다고 믿는 유연한 종교관 덕분에 목사들보다도 이웃한 사찰의 스님과 도타운 교분을 쌓고 있다. 또 생태문제와 환경문제에도 큰 열의를 갖고 있다.


그는 소소한 삶의 이야기를 담아 ‘참꽃 피는 마을’과 ‘종소리’라는 제목의 수필집 2권을 냈다. 질펀한 토박이말로 쓴 글에서는 시골 사는 농부의 고단함이, 때로 목사의 고뇌가 묻어난다. 최근 그는 어린이들을 위해 동화책 ‘예수(파랑새 어린이)’를 출간했다. 글을 읽고 임목사의 팬을 자처하는 이들은 지금도 그의 홈페이지 ‘선무당’(www.sunmoodang.com)을 찾는다.


임목사는 “어느날 돌아보니 밀레의 ‘만종’처럼 종소리가 은은하게 울려퍼지는 종탑이 있는 아름다운 교회의 목사가 되어 있더라”며 “지금의 삶이 만족스럽다”고 했다.


강진/윤민용기자 artemix@kyunghyang.com/

 

 

 

 


 

 

 

 

 

 

 

 

 

 

'일반' 카테고리의 다른 글

뇌를 젊게하는 8가지 습관  (0) 2013.10.12
바람의 종류  (0) 2013.10.12
덤벼  (0) 2013.10.12
가을사랑  (0) 2013.10.12
가을이다  (0) 2013.1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