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해거름이었다. 나는 저녁에 먹을 양식을 구해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양식이라고 하니 쌀이나 빵 같은 것을 염두에 두실지도 모르겠다.
미안하지만 그게 아니라 논둑이나 밭둑에 흔하게 돋아있는 잡초를 두고 하는 말이다.
웬 잡초? 잡초를 먹는다고? 그렇다. 나는 매일이다시피 흔해빠진 잡초를 뜯어다 살짝 삶아 밥에 비벼먹곤 한다.
그 동안 내가 뜯어먹은 잡초만 해도 서른 가지가 넘는다.
꽃다지, 개망초, 민들레, 왕고들빼기, 씀바귀, 쇠비름, 참비름, 뽕잎, 모시물퉁이, 새삼, 토끼풀, 돌나물, 질경이, 환삼덩굴, 달맞이꽃… 등등.
사실 저마다 어엿한 이름을 갖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맛있고 향긋한 풀들을 싸잡아서 ‘雜(잡)’을 붙여 부르는 게 미안해 나는 어느 때부턴가
그 흔한 풀들을 야초라 호명하고 있다.
오늘도 나는 그렇게 야초를 뜯어 휘파람을 불며 집으로 돌아오고 있는데, 경로당 회장이신 방씨 영감님이 오토바이를 타고 오시다가
날 보더니 오토바이를 멈추고 알은체를 하셨다. 동네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면 간섭 안 하고는 못 배기는 약방 감초 같은 영감님이시다.
“고선상, 오늘은 어딜 다녀오시우?”
배꼽이 훤히 드러나 보이는 짧은 베잠방이를 헐렁하게 걸친 영감님은 경로당에서 한 잔 걸치셨는지 얼굴이 불콰하다.
“저녁거리로 먹을 풀 좀 뜯었어요.”
“또 잡초를 드실려구?”
그 동안 영감님은 몇 번인가 내가 야초 뜯어 오는 걸 보신 적이 있다.
“네.”
“앞으로는 고선상 이름을 바꿔야 쓰것구만. 염소라카든지 토끼라카든지….”
영감님은 이렇게 말해놓고는 한참 동안 키들키들 웃으시더니 쌩~ 오토바이를 몰아 언덕배기로 올라가신다.
내가 영감님 말씀처럼 염소나 토끼가 즐기는 야초를 뜯어먹기 시작한 건 올해 이른 봄부터다.
낡은 한옥에 세들어 세 해째 살고 있는데, 넓은 마당에는 숱한 풀들이 저절로 돋아나 자주 낫을 들고 풀을 베어내야 했다.
어느 날 웃자란 풀들을 베다가 문득 몇 가지 풀을 뜯어 입에 넣고 꼭꼭 씹어보았다. 오, 먹을 만했다.
입안이 향긋해졌다. 그래서 여러 종의 풀을 뜯어 밥에 썰어 넣고 고추장으로 비벼 먹어 보았다.
목으로 넘어가는 느낌이 매우 상큼했고, 몸에도 불끈 힘이 솟는 것 같았다.
나는 그 후로 매일같이 야초비빔밥을 해먹으면서 산야초 도감을 구해 본격적으로 야초에 대한 공부도 병행했다.
특히 집 가까이 있는 흔한 야초들부터.
이를테면 토끼가 잘 먹어서 그렇게 불리게 된 토끼풀은 두통과 지혈, 감기에도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고,
고추밭 고랑 같은데 돋아나면 매우 질긴 생명력을 자랑하는, 그래서 농부들이 아주 골치 아픈 풀로 미워하는 쇠비름은
암, 관절염, 당뇨에도 좋다고 하며, 울타리 밑이나 논밭 가에 돋아나 손등이나 팔뚝 같은 데 긁히면 심한 상처를 내어
사람들이 매우 싫어하는 환삼덩굴은 고혈압이나 위장 질환에 좋고 소변도 잘 나가게 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아주 흔하디흔한 야초 몇 가지를 예로 들었거니와 이 밖의 모든 야초가 저마다 뛰어난 약성을 갖추고 있고,
건강에 관심이 많은 요즘 천덕꾸러기였던 쇠비름이나 개똥쑥 같은 것들은 진귀한 대접을 받고 있기도 하다.
그렇다고 내가 야초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 단지 건강에 대한 관심 때문만은 아니다.
그럼 그런 귀찮은 짓을 왜 매일같이 하며 사냐고?
첫째는 그렇게 흔한 풀들을 뜯어먹으면서 ‘흔한 것이 귀하다’는 것을 자각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흔치 않은 것을 귀하게 여기지 않던가? 흔치 않은 것을 귀하게 여기는 건 흔치 않은 것이 귀한 대접을 받기 때문이다.
금은보화가 대접을 받는 건 그게 흔치 않은 물건들이기 때문이다.
어느 선사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제자 한 사람이 물었다. “스승님,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이 무엇입니까?” 스승이 대답했다.
“죽은 고양이다.” 제자가 의아한 눈빛으로 다시 물었다. “어찌하여 죽은 고양이 따위를 귀하다고 하십니까?”
“값이 없기 때문이다.” 오늘 내가 뜯어먹는 풀은 모두 저절로 난 것들이며 전혀 비용이 들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게 값이 없는 풀들이, 비용을 지불하지 않아도 되는 풀들이 나를 살린다.
값없이 누리는 햇빛, 달빛, 별빛, 공기, 아름다운 저녁놀, 무지개, 어머니의 사랑, 아기의 해맑은 미소가 우리를 살리듯이!
둘째는 흔한 것이 귀하다는 생각을 하다보니, 우리가 사용하는 에너지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흔한 에너지가 나를 살리고
지구별을 살릴 수 있을 거란 결론에 도달했다.
흔한 에너지라니? 아마도 눈치 빠른 이들은 내가 석유나 원자력 같은 에너지를 말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아챘을 것이다.
그러면 어떤 에너지? 아주 구하기 쉬운 흔해빠진 에너지. 값이 없지만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에너지.
인류의 스승인 붓다가 자비라 일컫고, 예수가 사랑이라고 부른 에너지 말이다.
그렇다. 자비나 사랑은 우리가 마음만 내면 우리 주변에 흔하게 널려 있는 야초처럼 얼마나 구하기 쉬운가.
어떤 수도자가 오늘날 ‘자비가 유배되어 있다’고 말했거니와 우리가 나만 잘살면 된다는 탐욕과 어리석음을 여의고 마음을 돌이키면,
유배된 자비를 우리 삶속에 다시 모실 수 있지 않겠는가.
모름지기 사람은 밥만 먹고는 살 수 없다. 우리의 밥에 자비와 사랑을 섞어 비벼야 우리는 비로소 사람다운 삶을 살 수 있다는 걸 깨닫는다.
너무 흔해서 사람들 발에 마구 짓밟히고 뽑혀 내동댕이쳐지는 초록의 혼들, 그렇게 풋풋한 것들을 내 몸에 모실 때,
나 또한 싱싱한 초록으로 지구 위에 나부낄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된 것처럼….
고진하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