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가끔 나는 내가 장애인인 것을 감사한다

U블럭 2017. 10. 19. 07:12

스웨덴 수영 국가대표, 세계 장애인 선수권대회에서 4개의 금메달 획득, 스톡홀름 음악대학 현대음악과 졸업, 구족화가 협회 작가, 성가대 지휘자, 가스펠 싱어, 도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협연, 전 세계인 언론으로부터 '천상의 목소리' 격찬, 가수 겸 작곡가로 15년간 9장의 앨범 출시, 스웨덴 국영방송 다큐멘터리 '목표를 향해' 주인공,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일본 등 10개국 언어로 출판된 베스트셀러 저자 등. 정말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보통 사람 같으면 한 가지 분야에서도 성공하기 힘들 텐데 레나 마리아는 수영선수이자 화가로, 가수이자 작곡가로, 그리고 베스트셀러를 쓴 작가로 멋진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녀에게는 두 팔이 없으며 왼쪽 다리도 오른쪽의 절반 길이인 30cm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처럼 중증 장애를 지니고 있던 그녀는 어떻게 자신의 불운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일까? 그녀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가끔 나는 내가 장애인인 것을 감사한다. 나는 대부분 다 해낼 수 있다. 그리 간단하지는 않지만 살아가는 것이 어렵지 않다. 남들과 사는 방식이 조금 다를 뿐이며 장애는 하나님이 내게 주신 특권이다." 레나 마리아 (Lena Maria)는 1968년 9월 28일 스웨덴의 중남부 하보마을에서 태어났다. 출생 당시 그녀의 몸무게는 2.4kg에 불과했다. 병원에서는 두 팔이 없고 한쪽 다리마저 짧은 그녀를 보호소에 맡기도록 권유하였다. 그러나 그녀의 아버지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비록 두 팔이 없지만 이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가족이다." 아버지 로루프 요한슨과 어머니 안나 요한슨은 레나를 정상아와 똑같은 방식으로 양육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레나를 장애인이라고 특별대우를 하면서 키우지 않았으며 모든 걸 혼자 힘으로 해 나가도록 만들었다. 한 번은 정원에서 놀고 있던 레나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급한 목소리로 도움을 요청하는 레나에게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저기 울타리까지 굴러가 보렴. 울타리에 기대면 혼자서도 일어설 수 있을 거야." 부모의 눈물겨운 정성과 헌신 덕분으로 레나는 점차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3살 때부터 수영을 시작했고 18세에 국가대표가 되었다. 왼발로 펜을 잡고 글을 쓸 수 있게 되었으며, 발가락으로 뜨개질을 해서 스웨터를 만들고, 십자수와 요리, 피아노 연주, 그리고 자동차 운전에 이르기까지 정상인과 똑같이 생활하고 있다. 게다가 그녀는 매우 밝고 명랑하게 행동한다. 초등학교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질문을 하면 레나는 손대신 발을 들고 흔들면서 '저요, 저요'를 외쳤다고 한다.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녀는 다음과 같은 조크를 건네기도 하였다. "팔이 없기 때문에 반지나 장갑을 잃어버릴 염려가 없어서 참 좋습니다." 물론 레나의 도전이 순탄하게 이뤄진 것만은 아니다. 한쪽 다리로 똑바로 일어서 걷는 데는 3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고 혼자서 옷을 입기까지에는 12년이라는 시간이 지나야 했다. 그 기간 동안 그녀는 끊임없이 시도하고, 실패했다. 그렇지만 그녀는 자신의 상황을 절망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는 자신의 장애에 대해 인생의 점핑보드와 같다고 말했다. 다이빙대의 발판인 점핑보드처럼, 장애가 인생을 새로운 차원으로 도약시켜 준다는 뜻이었다. 결국 그녀는 자신의 말처럼 세상을 향해 더 높이 도약하는데 성공했다. 1986년, 세계장애인 수영선수권에 출전한 레나는 50m 배영 종목을 포함해 4개의 금메달을 획득했다. 시상대에 올라선 그녀의 모습을 지켜 본 스웨덴 국민들은 뜨거운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
- 팔이 없고 다리 한쪽에 의해 살아가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레나 마리아 - ● 레나 마리아의 출생 비록 지구의 반대편에서 살고 있긴 하지만 지금 이 시대를 같이 살아가는 사람으로 레나 마리아는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는 Human Success Story이다. 그는 1968년 스웨덴의 중남부 조그마한 시골마을에서 젊은 부부의 첫 아이로 태어났다. 아이를 낳고 보니, 두 팔이 없었고, 왼쪽 다리도 30 센티미터 정도이며, 오직 오른쪽 다리만 정상인 중증 장애인이었다. 산모는 키 48cm, 몸무게 2.4kg의 불쌍한 신생아를 안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장애인 특수 보호시설에 맡겨야 된다는 것이 의사들은 물론 주변의 공통된 충고이었다. 어머니나 아버지의 생각은 달랐다. 이름을 레나 마리아로 정했다. 오히려 레나는 장애인이기에 더욱 가족의 사랑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 부모의 헌신적 교육 부모의 기도와 헌신적인 교육이 시작되었다. 레나는 중증 장애에도 불구하고 어려서부터 밝고, 맑게 자랄 수 있었다. 장애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거기에 철저히 적응하는 방법을 체득하게 된다. 하루는 레나의 가족이 이웃집의 초대를 받았는데 그 집 아이들과 정원에서 놀던 레나가 넘어지고 말았다. 급히 엄마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어머니는 도와주지 않았다. 오히려 울타리까지 굴러 가도록 유도하였다. 울타리를 이용하여 스스로 일어날 수 있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 초등학교의 입학 초등학교 입학하던 날, 친구들이 이상하게 생긴 레나에게 말을 걸어오면, 레나는 자기 몸에 대해 거리낌이 없이 모두 이야기를 해 주니까 쉽게 누구하고도 친구가 될 수 있었다. 모든 일에 열성을 보였다. 한쪽뿐인 오른발과 발가락으로 글씨도 쓰고 그림을 그리는 것은 물론, 커피도 끓이고 속옷을 입을 수도 있으며, 좋아하는 십자수도 놓을 수 있을 정도이었다.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질문을 하면 다른 아이들은 손을 들고 '저요, 저요'를 외칠 때 레나는 손 대신 발을 들어 흔들면서 시켜달라고 했다. 신체적 결함으로 인한 정신적 결함을 이겨내고 무척 밝은 성격의 아이로 자랐다. ● 수영선수가 되다 어려서부터 부모를 따라 수영하기를 좋아했는데 남보다 몇 갑절 노력하더니, 마침내 그가 18살이 되던 1986년에 스웨덴 보리에서 열린 신체장애자 세계수영 선수권대회에서 50m 배영에서 영예의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 모습을 중계하던 스웨덴 TV의 아나운서는 물론 해설자도, 카메라맨도 모두 소리내어 울었다. 아니 시상대에서 스웨덴 국가가 울려 퍼지는 장면을 본 모든 스웨덴 국민들은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우리나라에는 1988년 서울 파라올림픽(장애인올림픽)에 참석하여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 음악대학에 진학 어려서부터 음악을 좋아했던 레나는 평소 좋아하는 음악 특기를 살려서 음악고등학교에 진학하였고, 스톡홀롬 음악대학 현대음악과를 졸업하였다. 지금 레나는 하나님께 전도하는 귀한 사명을 감당하고 있다. 그는 교회에서 성가를 지휘하기도 하는데, 손이 없는 레나는 머리와 얼굴, 입술, 시선 등 몸 전체를 통해서 지휘를 하고 있다. ● 가스펠싱어로 전 세계를 가스펠싱어(gospel singer)란 복음가수를 말한다. 지금 세계의 여러 도시로 복음을 전파하는데 노력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공연한 일이 있다. 두 팔이 없고, 한쪽 다리만 사용하므로 걸음이 서툴러 그의 얼굴엔 언제나 즐거움이 가득하다. ●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우리나라 말로 부른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은 레나의 사연을 아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감동을 주는 애창곡이 되었다. 그의 수기 “발로 쓴 내 인생의 악보”는 스웨덴은 물론 우리나라, 미국,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일본 등에서 출간되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특히 기독교 인구가 적은 일본에서는 그의 책과 콘서트가 일본의 복음 전도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감동 팔 없는 사람이라고 불리지 않기 위한 형언하기 어려웠던 그의 노력보다도 오히려 더 돋보이는 것은 얼굴에서 뿜어내는 웃음과 성격에서 나타나는 밝음이 더욱 감동을 갖게 한다. 한 인간의 승리를 칭송하기 전에 이 보다 훨씬 좋은 여건에서도 아직도 어두움과 안타까움으로 살아가는 나와 주변 사람들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 Lena Maria 어록 - "자신이 무언가를 혼자서 할 수 없으면 그 때 그 사람은 장애인이지만 혼자서 할 수 있으면 그 때는 더 이상 장애인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장애인이 아니다.” - "인간은 누구나 문제없이 인생을 살 수 없다. 인간으로서의 풍요로움이란 고난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존경하는 사람들을 만났을 때 그것을 느낀다. 인생의 고난을 극복한 삶이 그들을 존경하게 만든다. 그러한 사람들과 비교하면 내가 특별히 어려운 상황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 마음 어디선가 내 이름을 부르는 당신의 조용한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다정하게 어루만지는 바람처럼 나는 당신 안에서 평안을 누립니다. 당신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사랑하노라 너의 친구가 되리라" 진정 사모하는 것은 내가 있는 곳에 당신이 함께 하시는 것. 당신은 나를 살피시며 내 마음을 어루만지시며 나를 위로하시는 분. 이해할 수 없는 일도 실패할 일도 당신은 아십니다 그래도 나를 사랑하십니다. 나는 알고 있습니다. 당신께서 나를 사랑하심을 나를 사랑하심을. * 사진은 그녀와 그녀의 남편인 "비욘'입니다


'일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은행나무  (0) 2017.10.27
장애  (0) 2017.10.21
현관문이 안 열린다면  (0) 2017.10.09
내가 살아보니까 / 장영희  (0) 2017.10.09
한국을 아십니까?  (0) 2017.1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