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발바르 국제종자저장소]
지구상 식물 90% 이상이 씨앗 번식… 10년 전 노르웨이에 저장소 만들었죠
영하 18도 진공 상태로 종자 보존, 씨앗 사라지면 보내달라 요청해요
우주를 떠돌던 소행성이 어느 날 지구를 덮쳤다고 상상해 보세요. 엄청난 충격으로 생긴 각종 먼지와 재가 소행성 파편과 뒤섞여 거대한 먼지 구름을 만들 거예요. 이로 인해 햇빛이 도달하지 않아 지구는 길고 어둡고 추운 '핵겨울'에 들어가게 되겠지요. 이때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죽은 땅을 다시 살리려면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을 '씨앗'이 필요하답니다.
하지만 씨앗을 비롯한 모든 생명은 한 번 멸종하면 복원하기 어려워요. 그래서 2008년 과학자들이 날씨가 변하거나 소행성이 충돌하는 것 같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귀중한 씨앗을 보관할 튼튼한 '요새'를 만들었어요. 올해로 설립 10주년을 맞는 '스발바르 국제 종자 저장소(Svalbard Global Seed Vault)'랍니다.
◇'노아의 방주' 스발바르 종자 저장소
지구 상에 존재하는 식물의 90% 이상이 씨앗을 만들어 번식하는 '종자(種子)식물'이에요. 씨앗이 사라진다면 인류를 포함한 모든 동물도 차례로 사라지고 말 거예요. 식물은 숨 쉴 수 있는 산소를 공급하고, 동물에게 살 곳과 먹을 것을 주는 중요한 존재이기 때문이지요.
이런 귀중한 씨앗을 보관하는 스발바르 종자 저장소는 노르웨이 스발바르제도(諸島)에 있어요. 스발바르제도는 노르웨이 북쪽 끝에 있는 여러 섬을 말하지요. 튼튼한 사암(모래암석)층으로 이루어져 있는 데다 화산 폭발 같은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적은 안정적인 지대예요. 지리적으로는 북극점과 약 1500㎞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서 매우 춥지요. 겨울에는 3개월간 해도 뜨지 않는다고 해요. 그래서 이 지역에는 땅속에 1년 내내 얼음이 꽝꽝 얼어 있는 '영구 동토층(땅속 온도가 0도 이하인 부분)'이 있답니다.
- ▲ /그래픽=안병현
스발바르 종자 저장소는 이 섬의 약 130m 높이 바위산 위에 만들어졌어요. 120m 길이의 터널을 걸어 들어가면 맨 끝에 씨앗 450만 개를 보관할 수 있는 지하 저장고 세 곳이 있지요. 저장고 안에 들어 있는 씨앗들은 진공(물질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공간) 봉투 안에 단단히 밀폐된 채 차곡차곡 쌓여 있답니다. 과학자들이 연구한 결과, 식물의 씨앗을 함수율(含水率·수분이 들어 있는 비율) 6~8% 정도인 건조한 상태로 밀봉해서 0~10도 사이의 낮은 온도로 저장하면 길게는 수십 년이 지났을 때 싹을 틔울 수 있거든요.
스발바르 종자 저장소는 규모 6 이상의 강한 지진은 물론 핵전쟁이나 소행성 충돌에도 버틸 수 있을 만큼 튼튼하게 만들어졌어요. 또 1년 내내 영하 18도를 유지해주는 냉동 장치가 설치돼 있어 씨앗이 싹을 틔우는 것을 막아줘요. 만약 냉동 장치가 고장 나더라도 영하 3.5도 정도인 스발바르의 영구 동토층이 자연 냉동고 역할을 해 주기 때문에 문제가 없어요. 이 때문에 스발바르 종자 저장소는 '노아의 방주(성경에서 신이 대홍수에 대비해 노아에게 짓도록 한 배)' 또는 '최후의 날 저장고'라는 별명으로 불리고 있지요. 국제연합(UN) 산하 세계작물다양성재단에서 운영을 맡고 있답니다.
◇올해 100만 개를 넘은 생명의 희망
스발바르 종자 저장소에는 매년 수만~수십만 개 씨앗이 들어오는데 지금까지 총 100만 개 넘는 씨앗 표본을 보관하고 있어요. 인류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식물 종자 거의 대부분이 여기 있다고 볼 수 있는데, 가장 많은 식물 종은 쌀과 밀로 약 15만 개이고 그다음이 보리(약 8만 개)예요. 우리나라에서도 콩·조 등 재래 식물종 1만3000여 개 씨앗을 스발바르에 보내 보관하고 있어요.
특정 지역에서 전쟁이 일어나 그 지역의 종자가 사라져버린 경우, 스발바르에 요청하면 씨앗을 받아올 수 있어요. 실제 2015년과 2017년, 시리아 국제건조지역농업연구센터는 오랜 내전으로 시리아 내 식물 종자가 사라져버릴 위기에 처하자 스발바르에 보관해둔 씨앗을 보내 달라고 요청했답니다. 이에 스발바르는 씨앗 약 9만 개를 시리아로 보냈지요.
지금도 지구상 어딘가 전쟁이나 지구 온난화, 환경오염 등으로 인해 많은 식물이 사라지고 있어요. 그래서 연구자들은 스발바르만 믿고 있어선 안 된다고 지적해요. 이곳에 보관한 씨앗들이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정말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을지, 수십~수백 년 후 바뀐 환경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 100%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에요.
스발바르제도도 지구온난화의 피해를 직격탄으로 맞고 있답니다. 섬을 둘러싼 빙하가 녹아내리면서 해수면이 높아져 지난해 종자 저장소 건물 입구가 물에 잠기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지요. 노르웨이 정부에서 종자 저장소 앞에 방수벽을 새로 쌓고 침수에 대비하는 보강 공사를 진행하고 있지만, 여전히 위기감이 돌고 있어 많은 과학자가 그 대안을 연구하고 있어요.
☞우리나라의 '시드 볼트'
스발바르 종자 저장소가 전 세계의 유일한 ‘씨앗 창고’인 건 아니에요. 각 나라에선 대부분 ‘종자 은행’을 운영해서 식물 씨앗을 보존하고 있어요. 그런데 최근 우리나라에도 스발바르처럼 다른 나라의 씨앗까지 보관하는 대규모 종자 저장소가 생겼답니다. 경북 봉화군 국립백두대간수목원에 있는 ‘시드볼트(Seed Vault)’이지요. 스발바르에 이어 가장 규모가 큰 종자 저장소로, 약 46만 개 씨앗을 보관하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