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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노른자 시기는?

U블럭 2017. 7. 22. 10:43

지금도 강연하는 96세의 철학자 김형석 



"내 몸에 무리가 갈까 봐 거의 운동도 안 해요

내게는 일할 수 있는 그만큼의 건강만 있으면 돼


우리 나이로 100세에서 네 살 빠지는 96세의 김형석 선생이 

한 방송에 출연해 강연하는 걸 보면서 내 눈을 믿기 어려웠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김형석 연세대 철학과 교수'를 모르겠지만, 

한 시절 젊은 사람들은 밤늦게 '고독이라는 병(病)' 

'영원(永遠)과 사랑의 대화' 같은 그의 인생론 수필을 읽으면서 성장했다.

그 과거 속 인물이 지금도 강연과 방송 출연,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형석 선생은

“고별 강연을 마치고 집에 오니

‘내가 교수답게 살았다’

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장련성 객원기자


[Q1] 

놀라울 따름입니다. 혹시 집안 내력이 장수(長壽)입니까?


[A1] 

부친은 아니지만, 모친은 100세까지 사셨어요. 


나는 어려서 건강이 안 좋았어요.

열네 살 무렵 경기(驚氣)와 졸도가 심해 저러다 죽을 줄 알았대요.

건강상 중학교도 못 갔어요. 

늘 조심했어요. 내 몸에 무리가 갈까 봐 운동도 안 했어요.

50대 후반에 수영을 시작한 걸 빼고는


[Q2]

운동을 적게 하는 것이 장수 비결처럼 들립니다.


[A2]

내게는 일할 수 있는 만큼의 최소한 건강만 필요해요. 

생전에 안병욱(安秉煜•전 숭실대 교수) 선생은 

정신적 긴장을 주는 공부와 여행, 연애가 장수 비결이라고 했어요.


내가 '그걸 알면서 당신은 왜 늙었나?'하고 농담하니,

'연애를 못 해 그렇다'고 답하더군요(웃음)."


[Q3]

저는 선생님과 꼭 40년 차이가 있습니다. 정말 궁금한데,

96년 세월의 길이는 어떻게 느껴집니까?


[A3] 

누가 내 나이를 말하면 '벌써 그렇게 됐나' 느끼지, 길게는 안 느껴져요. 

노인들은 '하루는 길고 일 년은 빨리 간다'고 해요.

하루가 길다는 것은 할 일이 없다는 뜻이지요. 

하지만 나는 일주일에 한두 번 강연 나가고 글을 써요. 

어제도 작은 글 한 편을 끝내고, 

그저께도 그랬고…."


[Q4]

재혼(再婚)을 생각해본 적은 없었습니까?


[A4]

노년의 재혼은 우리 사회와 가족 시스템에서는 쉽지 않아요.

동거(同居)를 선언하고 살면 몰라도…. 

같은 동네에 아들이 살고 있지만 3자(者) 같아요. 

'너는 너고 나는 나로구나'를 느낍니다.


[Q5]

선생님의 연세에 죽음을 떠올리면 어떤 기분이 듭니까?


[A5]

가까워지니 생리적인 두려움이 있지요. 

소도 도살장에 가까이 가면 본능적으로 울지 않습니까. 

하지만 내 생명보다 더 귀한 것을 위해 살면 된다는 생각을 하죠. 

이를 위해 나를 바칠 수 있다면 죽음을 이기는 삶이 되겠지요.


[Q6]

생명보다 더 귀한 것이 뭘까요?


[A6]

사랑하는 사람, 이웃, 사회, 국가가 그런 대상이 될 수 있겠지요.

나이가 드니까 나 자신과 내 소유를 위해 살았던 것은 다 없어져요.

남을 위해 살았던 것만이 보람으로 남아요.


[Q7]

만약 인생을 되돌릴 수 있다면, 어느 나이로 가고 싶은가요?


[A7]

60세로 돌아가고 싶어요.


[Q8]

예상 밖입니다. 젊음을 갖고 싶다고 할 줄 알았는데요.


[A8]

젊은 날로는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그때는 생각이 얕았고 행복이 뭔지 몰랐어요."


김태길(金泰吉)•안병욱 교수와는 동갑인 데다 전공도 같아 친했지요.

생전에 이분들과 '우리 인생에서 노른자의 시기가 언제였을까'로 대화한 적이 있어요. 

답은 65세에서 75세까지였어요. 


그 나이에야 생각이 깊어지고, 행복이 무엇인지,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게 됐거든요."


[Q9]

선생님이 알게 된 행복은 어떤 것입니까?


[A9]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고생하는 것, 

사랑이 있는 고생이 행복이지요.


[Q10]

독실한 기독교인이지요?


[A10]

그렇다고 교회를 다니는 것이 아닙니다. 

지성(知性)적인 고민을 하면서 목사의 설교를 받아들일 수는 없거든요. 

예수님은 교회를 지키기 위해 교리를 가르친 게 아니지요.

예수님 자체가 우리의 인생관•가치관이 돼야지요.


[Q11]

몇 년 전 이어령 선생이 기독교에 귀의한 것도 그렇고, 

지성인들이 만년(晩年)에 종교를 받아들이는 것은 

결국 인간은 신이 필요할 수밖에 없는 약한 존재이기 때문일까요?.


[A11]

파스칼(1623~1662•프랑스 사상가)은 '인간은 비참해질 수 있다.

스스로 힘으로는 구원할 수 없을 정도까지. 

인간은 환희(歡喜)를 누릴 수 있다. 스스로 힘으로는 도달할 수 없을 정도까지. 

이런 비참과 환희를 다 줄 수 있는 존재가 있다면 의지해야 한다'고 했어요.


[Q12]

만약 신이 없다면 인간이 신을 만들어서라도 있게 해야 한다는?


[A12]

이를 '요청적 유신론(有神論)'이라고 하지요. 

신이 존재하도록 인간이 요청한다는 거죠.



1시간 반 넘게 자리를 함께했지만 그가 96세임을 증명할 수 없었다. 

그는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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